산이 저기 있기 때문에 산을 오른다는 사람들처럼 서양화가 김가범(예명ㆍ66)씨도 작업실 창 너머로 산(우면산)이 있기 때문에 산을 그렸다. 하지만 그냥 산의 모습이 아니다. “바다, 초원, 사막에는 없는 에너지가 산에 있어요. 인간의 삶에 가르침을 주는 힘이랄까요. 보이지 않는 힘을 표현했습니다.”
김씨는 자신의 그림 전시회, ‘꿈의 산’연작전을 서울 인사동 태화빌딩 지하 1층 아카스페이스에서 열고 있다. 그의 갈망과 열정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사실 그는 돌고 돌아 이 자리에 섰다. 미스코리아 출신인 김씨는 13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화가가 되기까지의 지난했던 과정을 털어놓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께 미대를 가겠다고 선언했는데, 굶어 죽는다며 완강하게 반대하셨죠. 몰래 화실을 다녔는데 뒤를 밟은 부모님한테 들키면서 제 눈 앞에서 이젤과 붓이 부러졌습니다.” 그렇게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화가의 꿈, 수십 년을 굽이굽이 돌아 2000년에 마침내 이뤘다. “몇 년 전엔 서른 넷 먹은 외아들까지 출가 시키면서 원 없이 작업하고 있어요. 가장 행복한 날들의 연속입니다.”
그는 데뷔 12년째인 늦깎이 화가이지만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4월 한국현대미술상, 그해 5월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에 이어 올해에도 한국현대미술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번 연작전에는 수상의 영광을 그에게 안겨준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도록 여백을 줬습니다.” 캔버스에 아크릴과 유화를 풀어 놓아 영락없는 서양화지만 독특한 표현 기법이 더해지면서 풍기는 분위기는 동양화 같은 느낌이다.
이번 작품은 그의 ‘전향’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구상화에서 비구상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작품이다. 자신의 이름도 ‘김성애’에서 ‘김가범’으로 바꿨다. “10여년 전에 만든 이름인데 사용하지 않다가 이번 작품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작품 뿐만 아니라 자신의 얼굴과도 다름 없는 이름에도 변화를 준 것이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그는 작품 구상에 여념이 없다. “요즘 부쩍 캔버스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작품 영역을 다양화 시킬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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