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4년 동안 이슬람권과 화해를 시도했다. 하지만 지금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인권 외교의 악몽을 떠올린다. 1977년 취임한 카터는 구소련과 리셋(재설정)을 추진하고 다른 국가와의 외교에서도 인권을 강조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중남미와 아프리카에서 공산주의 운동이 발호하고 동유럽은 재래식 무력을 강화했다. 수단에서 미국 대사가 살해되고 이란에서는 대사관 직원 52명이 444일간 인질로 잡혔다. 해군 전투기가 리비아 미그23기의 공격을 받았으며 레바논에서는 대사관과 해병대 기지가 폭파돼 300명 이상이 숨졌다. 지금 미국의 보수진영은 오바마의 외교를 비판하기 위해 카터의 실패를 인용하고 있다.
오바마는 중동 언론과 취임 첫 인터뷰를 할 정도로 이슬람권을 '미국 친화적'으로 만들기 위해 공을 들였다. 2009년 6월 '사과(謝過)투어'를 시작하면서 첫 방문지로 이슬람 사회의 중심지인 이집트 카이로를 선택했다. 당시 그는 "미국과 무슬림 관계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 이곳에 왔다"며 신뢰와 존중, 절제와 인간존엄의 가치 공유를 제시했다. 조지 W 부시 전임 대통령의 일방주의로 인한 반미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가운데 이름인 '후세인'을 자랑하기까지 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2년 뒤 실시한 조사에서 미국에 대한 아랍세계의 호감도가 부시 정부 말기 때보다 더 낮게 나왔다.
지금은 아랍권 전체가 반미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아랍권 최대 동맹국인 이집트와의 관계는 오바마가 "동맹으로도, 적으로도 간주하지 않는다"고 할 만큼 유동적으로 변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이란 문제에까지 파장을 미치는 양국 관계가 틀어지면 미국의 중동정책도 따라 바뀌어야 한다. 이번 사태를 신중히 지켜보던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은 "오바마 외교는 미국 영향력을 약화시킨 무책임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 동안 오바마의 외교에 높은 점수를 주던 미국 언론들도 외교정책의 검토를 압박하고 있다. 강한 외교, 힘의 외교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오바마 정부가 어떤 답을 내놓을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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