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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orld View/ 팔·다리는 잃었다… 그러나 그의 사진 더 큰 '울림'을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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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orld View/ 팔·다리는 잃었다… 그러나 그의 사진 더 큰 '울림'을 얻다

입력
2012.09.1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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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국 런던에서 열린 패럴림픽의 주인공은 성치 않은 몸으로도 비장애인보다 더 멀리, 더 빨리 혹은 더 열심히 뛴 선수들이었다. 선수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포착한 사진이 전세계로 송신될 즈음 그들이 이용하는 의수, 의족, 휠체어 등을 제작하는 기술자들의 작업실 풍경을 담은 사진이 함께 공개됐다. 기술자들이 특수소재로 싸인 의족의 외피를 찢고 그 안의 기계 관절을 손 보는 사진은, 자칫 끔찍하게 보일 수도 있었으나 자연광과 흑백의 색감을 통해 담담한 일상처럼 표현됐다. 모든 선수를 뛸 수 있게 해주는 의족 제작 현장으로 눈을 돌린 사진작가는 영국 출신의 질스 둘리(40)다. 보그, 에스콰이어 등 유명 패션지의 사진작가로 활동하던 그는 지금 사지 중 오른쪽 팔만 남은 상태다.

한 걸음 딛는 순간, 거대한 폭발음이…

패션 사진작가로 이름을 날리던 그가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난 이유는 상업 사진계에 환멸을 느껴서다. 머라이어 캐리 같은 톱스타를 주로 촬영하던 그는 유명인의 일거수일투족에 울고 웃는 업계 현실에 문득 허망함을 느꼈다. '사진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그가 찾아간 곳은 아프가니스탄, 수단, 앙골라 등 테러가 일상처럼 일어나는 지역이었다. 그곳에서 내전에 지치고 테러에 상한 난민들을 만나서 그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외부에 알렸다.

운명의 날인 지난해 2월 7일. 그는 순찰을 나가는 미군을 따라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로 향했다.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결성된 곳이자 도시 절반이 아직 탈레반의 세력 아래 있는 위험한 지역이었다. 군인들을 따라 걷던 그는 어느 순간 발 밑에서 이상한 감각을 느꼈고 발을 떼는 순간 거대한 폭발음을 들었다. 땅에 매립된 사제 폭발물을 밟은 것이다.

무심코 내디딘 한 걸음의 대가는 처참했다. 폭탄은 그의 왼쪽 팔과 두 다리를 날려 버렸고 파편은 내장까지 파고 들었다. 즉시 영국으로 후송된 그는 버밍엄의 퀸엘리자베스 병원에 입원해 한달 반에 걸쳐 집중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상태는 갈수록 악화했다. 팔다리가 날아간 것도 모자라 위와 폐의 기능까지 손상됐다. 사경을 헤매는 그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온 가족이 모인 것만 두 차례였다.

수술 횟수가 서른번이 넘고 더 이상 세는 것도 무의미해질 즈음 그의 상태가 기적적으로 호전되기 시작했다. 심신이 안정을 찾은 이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팔다리를 잃은 자신의 모습을 찍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이 팔다리를 잃은 내 모습을 촬영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건 그들이 자의로 해석한 나의 모습이다.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패션 사진작가로 활동했던 시절 모델을 촬영했던 기법을 이용, 깨끗한 흰색을 배경 삼아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무릎 위까지 잘려나간 오른쪽 다리가 의자 위에 볼품 없이 얹어졌지만 흑백사진 속 그의 모습은 당당하다. 그는 이 사진에 '그리스 조각상'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사진을 수치라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들도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나의 내면의 강함을 드러낸다."

"갈등과 분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19개월에 걸친 지난한 치료 과정이 지나고 올해 9월 드디어 다시 카메라를 잡았다. 의족을 끼우고 잘려나간 팔을 소매로 감싼 그는 패럴림픽이 열리는 런던으로 향했다. 그러나 다시 시작한 작업은 쉽지 않았다. 이전처럼 괜찮은 장면이 나올 때까지 오래 기다릴 수도 없었고 결정적인 순간이 왔을 때 빠르게 셔터를 누르는 것도 힘들었다. 심지어 카메라를 들 힘도 없어 작고 가벼운 것으로 바꿔야 했다.

"현실을 인정해야 했다. 이제 더 이상 우크라이나 빈민가의 소년과 놀 수 없다는 것, 아프간에서 군인들 순찰에 따라 나설 수 없다는 것을. 이런 일들은 내 인생에서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옥죄는 몸이 촬영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곧 눈을 떴다. 그는 이것을 "감정 이입"이라고 불렀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은 내가 다른 어떤 것보다 피사체와의 관계에 집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술이다."

올해 말 그는 다시 아프간 행을 계획하고 있다. 지난번 미처 수행하지 못한 임무를 마치기 위해서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총격이 울리는 이 나라의 병원을 찾아가 자신처럼 팔다리가 잘려나간 사람들의 모습을 담을 예정이다. 최종적으로는 전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폭력으로 신음하는 이들의 모습을 기록, 그 참상을 알리는 것이 목표다.

"나는 전쟁 현장을 찍는 사진가가 아니다. 갈등과 분쟁의 흔적을 담는 사람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팔다리를 잃은 무명의 군인, 베트남전 참전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모습을 담고 싶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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