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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책]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 푸른역사 발행ㆍ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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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책]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 푸른역사 발행ㆍ1만5000원

입력
2012.09.1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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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뒀더라. 책꽂이에 꽂힌 채로 색까지 바랜 열음사 판 <윤동주 평전> (1996년 증보 6쇄)을 찾아 나선 건 이정명의 소설 <별을 스치는 바람> 때문이었다. <뿌리 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 등 드라마로 만들어진 흥미진진한 역사소설을 써온 이씨의 역량은 이번 작품에서도 유감이 없다. 채 서른이 되기도 전에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의 차디찬 독방에서 외마디 비명과 함께 스러진 윤동주의 마지막 삶을 미스터리 스타일로 박진감 있게 그렸다.

윤동주는 정말 어떤 최후를 맞았던 걸까. 소설을 읽고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윤동주 평전> 이 떠올랐던 거다. 저자는 윤동주의 동갑내기 고종사촌형으로 '같은 해에 같은 집에서 태어나 같은 해에 같은 일제의 감옥에서 같은 죄목으로 나란히 옥사한' 송몽규의 조카다. 장편소설 몇 편을 썼고 역사 연구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와는 문화부 기자로 몇 번 만날 기회가 있었다. 저자에게는 미안한 말씀이지만 내용이 어렴풋하게라도 기억에 없는 걸 보면 '사인'에 해당하는 증정 글귀가 담긴 책을 저자에게서 직접 받고도 건성으로 넘겨보고 말았던 모양이다.

그리 길지 않은 세월인데도 벌써 낡은 책 냄새까지 훌훌 풍기는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겨 가다 그만 이 평전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저자가 고증에 더할 나위 없이 치밀하다는 것은 여러 저술을 통해 익히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는 그런 사료 고증은 물론이고 윤동주를 아는 많은 사람을 인터뷰해 시인의 삶을 생생하게 되살려 놓았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이런 대목들이다. '계절이 지나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있읍니다'로 시작하는 그의 시는 왜 '별 세는 밤'이나 '별 헤아리는 밤'이 아니고 '별 헤는 밤'일까. 문제를 푸는 열쇠는 윤동주가 나고 자란 두만강 건너 땅 북간도를 지배했던 함경도 육진(六鎭)문화에 있다. 저자에 따르면 김종서의 개척 이후 육진 주민들은 주변과 별 내왕 없이 폐쇄적으로 살며 세종 당시의 말소리를 한말까지 유지했다. '헤다'는 국어사전에 '세다'의 함북 사투리라고 나오는데, '함경도'가 아니라 굳이 '함북'이라고 한 것은 육진 사투리를 의미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북간도 사람들은 경음화하지 않은 '순하고 은근하고 아름다운' 옛말을 간직하고 있었고 윤동주의 시는 그런 언어문화의 산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국어교과서에 가장 많은 작품이 수록된 이 국민시인의 시가 처음부터 탁월했던 것은 아니다. 평양 숭실학교 시절인 10대 후반의 초기 작품에는 문학청년 취향의 현학적인 정서가 두드러진다. 그런 시풍이 일거에 변하는 것은 1935년 말 '조개껍질'을 시작으로 잇따라 동시를 쓰면서부터다. '이 돌연한 전환, 갑자기 성큼 앞으로 나간 발전'의 비밀은 그 즈음 나온 <정지용 시집> 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고 저자는 본다. 이 시집에는 정지용의 대표작 '향수' 등과 함께 여러 편의 동시가 당당히 실려 있었다. 지금도 남아 있는 윤동주의 <정지용 시집> 유품에는 곳곳에 붉은 줄이 그어져 있고 이런 저런 감상이 깨알 같이 적혀 있다. 윤동주가 문학청년 태를 일거에 벗어 던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떠난 뒤 세상에 빛을 본 유일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에 서문을 쓴 정지용의 영향이 컸다.

<별을 스치는 바람> 의 주요 모티프인 그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에 대해서도 평전은 소상히 다뤘다. 그가 죽기 직전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맞았다는 것을 여러 증언을 통해 밝히면서 아시아태평양 전쟁 말기 전장에서 필요한 혈장을 대체하는 생리식염수 인체 실험의 피해자였을 수 있다는 일본 학자의 추정을 소개했다. 같이 옥중에서 주사를 맞다가 윤동주가 절명하고 채 한 달이 안 돼 숨을 거둔 송몽규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다고 한다. 시신을 거두러 간 그의 부친이 "내가 왔다"며 눈 감기고 화장하기 전날 밤 송몽규는 아버지 꿈에 나타난다. 윤동주의 동생 혜원씨의 증언이다. "몽규 오빠가 꿈에서 '내 뼛가루 한 점이라도 이 원수의 땅에 남기지 말아달라'고 했대요." 윤동주의 유해는 화장해 재를 현해탄 바다에 날리고 뼛가루를 담은 작은 나무 상자로 돌아왔지만, 송몽규의 아버지는 재는 물론이고 "타다 남은 뼈를 절구질할 때 튄 것까지 모조리 쓸어 모아서 갖고" 왔다.

<별을 스치는 바람> 은 지금까지 8만부 정도가 나가 올해 국내에서 출간된 소설 중 가장 많이 팔렸다고 한다. 그 소설을 읽었던 사람은 꼭 이 평전을 찾아 읽기를 권한다. 소설보다 훨씬 흥미진진할 뿐 아니라 감동적이다. 이 책은 과거 <외국문학> 이라는 훌륭한 계간지를 냈던 열음사에서 처음 나왔다가 1990년대 후반 세계사에서, 2000년대 중반 푸른역사에서 재출간돼 지금은 푸른역사 판으로 구할 수 있다.

[다시 읽고 싶은 책]지난주 선정도서 <혼불> 당첨자 10분입니다. @uniggalove @gangmin84 @Herabling @chlgpdus921 @swjsl6 @modelomg @iamsherlocked11 @dk08050 @mr_1005 @freestyle0527 축하드립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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