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고 만난 일본/김윤식 지음/그린비 발행ㆍ808쪽ㆍ3만2000원
김윤식(76) 서울대 명예교수는 원로 국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로 독보적 존재다. 그러나 이름 석자만으로 위엄을 갖는 한국 비평계의 전설은 그의 자전 에세이 <내가 읽고 만난 일본> 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노력을 하면 할수록 나는 길을 잃게 되었다." 내가>
책은 젊은 청년 비평가에서 이제는 원로학자가 된 김윤식의 지적 여정을 세밀하게 담았다. 1962년 비평가 데뷔한 후 이광수 등 일본에 유학간 문인들의 연구를 위해 1970년과 80년 두 차례 현해탄을 건넌 김 교수가 접한 거장 5인을 두고 평생 전력을 다한 글쓰기에 대해 회고한다. 비평이란 무엇인가를 깨우치게 한 일본 비평계 거목 고바야시 히데오, 목숨을 건 글쓰기가 무엇인지 보여준 에토 준, 도쿄대 교수직을 버리고 파리에 눌러 앉은 모리 아리마사, <국화와 칼> 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 <일제하의 사상통제> 를 쓴 미국 학자 리처드 H 미첼이 바로 그들이다. 일제하의> 국화와>
난해한 글쓰기로 유명한 김 교수는 13일 한국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사람들이 쉽게 편하게 읽어볼 수 있게 쓴다고 썼다"고 강조했다. 34세의 젊은 조교수 김윤식은 미국 하버드대 옌칭 프로그램을 통해 일본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에 외국인연구원 신분으로 머문다. 당시만해도 일본은'거의 천국처럼 보였던' 나라로 그는 동경과 함께 일종의 콤플렉스를 갖고 평생 사표로 삼을 만한 선배들을 만나게 된다. "에토 준은 특히 굉장한 사람입니다. 이 양반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냐면 자기 마누라가 죽어가는 것까지 묘사할 정도로 결사적으로 글을 썼어요. 연재했던 글들도 목표에 도달하지 않으면 대번에 버렸고. 결국 글을 쓰게 될 수 없게 되자 자결을 했습니다."
1년의 체류기간 당초 목적이었던 이광수 연구는 첫작품 '사랑인가'를 찾아냈을 뿐 큰 성과가 없었지만, 그가 헝가리 비평가 게오르크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에 매료된 덕분에 지금껏 국문학도들의 필수 교재가 된 <소설의 이론> 이 국내에 소개될 수 있었다. 소설의> 소설의>
그가 걸어온 궤적 자체가 한국 비평사이기에 이 에세이집이 지니는 무게감은 상당하다. 그러나 808쪽의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책에 학자들의 숨결이 생생히 살아있어 국문학에 큰 관심이 없는 이라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연구자와 비평가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문학적 글쓰기를 계속해 온 그는 희수(喜壽)의 나이에도 매달 발표되는 문예지 소설을 모두 읽고 월평(月評)을 쓰는 영원한 현역이다. "소설은 우리 사는 이야기입니다. 이게 내가 소설 비평을 계속하는 까닭입니다. 요새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사는지 알아보려는 게 또 소설을 읽는 이유입니다." 김 교수는 원래 문학은 안중에도 없었는데 근대 연구를 하다 보니 소설이야말로 인류사와 더불어 진화한 근대의 장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비평을 하게 됐다. 다만, 쓰다보면 그것이 시나 소설 형식을 도저히 취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인류사의 이념을 다루는 것이 문학이며, 문학이 집중적으로 뭉쳐있는 게 문예비평이라고 믿었기에' 그에게 문학은 이데올로기였고 때문에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가 문학비평의 출발점이 됐다. 김 교수는 여전히 카프의 선봉 임화만큼 그를 사로 잡은 문인은 없다고 했다.
김 교수는 한국문학사 연구와 현장비평의 경계를 오가며 1976년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 부터 160여권 이상의 저작을 냈다. 그것도 모두 육필로 원고를 써왔다. 고백한다는 표현이 유독 자주 등장하는 이 책에는 밀도 있는 내용과 논리적인 문장을 구사하는 데 평생을 다한 노력이 비친다. 노(老) 교수는 책 서문에서 자신을 문수보살도 없이 바랑만 메고 헤매는 선재동자에 비유했다. 겸손함은 그만큼 글을 쓴다는 것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일 게다. 또 다른 문수보살인 후배 비평가들에게도 그와 마찬가지로 필사적 몸부림으로 글을 쓸 것을 당부한다. 평생을 건 그의 글쓰기 앞에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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