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달러를 더 많이 찍어내기로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3번째 양적완화(QE3) 조치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 6일 재정위기 회원국 국채 무제한 매입 카드를 꺼내든 데 이어, 미국도 경기 부양을 위한 총력전에 나선 것이다. 미국과 유로존의 유동성 공급 확대 조치가 글로벌 경기침체의 근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지만, 위기를 어느 정도 완화시켜준다는 점에서 전세계 금융시장은 반기는 분위기다.
14일(우리 시간) 새벽에 열린 9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QE3를 내놨다. 이달 들어 미국 고용지표가 또다시 악화되면서 QE3에 대한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다만 공화당 정부시절 임명된 버냉키 의장이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후보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유리한 조치를 내놓을 것인가를 놓고 의견이 갈리기도 했다. 하지만 ‘헬리콥터 벤’(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돈을 헬기에서 뿌릴 만큼 과감한 통화확대 정책을 쓴다는 의미)이란 별명답게 또 한번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과감한 유동성 확대 카드를 꺼내 들었다.
우선 매월 400억달러 규모의 주택담보부증권(MBS)을 사들이기로 결정했다. MBS를 매입함으로써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떨어뜨리고 주택거래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의도다. 나중혁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가계 자산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택가격을 부양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단기채권을 팔고 장기채권을 사들이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도 연말까지 병행한다. 규모는 매월 450억달러로 유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미 연준은 연말까지 매달 850억달러(약 95조원)의 돈을 풀어 장기채권을 사들이게 된다. 장기국채 매입을 통해 장기금리가 떨어지면 기업들의 자본 조달 비용이 하락해 투자와 고용이 늘어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다. 당초 2014년까지 유지하기로 했던 초저금리 기조(0~0.25%)도 2015년 중순까지 연장하기로 해 채권시장 안정 조치도 강화했다.
버냉키 의장은 또 “고용시장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MBS를 계속해서 매입하겠다”고 밝혀 경제가 정상화될 때까지 양적완화 조치를 사실상 무기한 연장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QE3가 최근 다시 침체국면에 들어선 미국의 소비를 진작시켜 세계경제의 악화를 막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다만 이 조치가 한국경제의 고용과 부동산 시장 등 실물경기 회복으로 이어질 지는 더 지켜봐야 알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부작용 가능성도 언급했다. 이명활 한국금융연구원 거시ㆍ국제금융연구실장은 “전반적으로 보면 글로벌 금융시장 안정에 크게 기여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신호”라면서도 “하지만 원화가 강세를 보이면 국내 수출 기업에는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14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은 11.20원 급락한 1,117.20원을 기록했다. 6개월 만에 최저치를 나타낸 것으로, 원화가치가 그만큼 상승했음을 보여준다.
국내 증시는 QE3발표와 미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의 국가신용등급 상향 등의 호재가 겹치며 5개월 만에 2,000선을 탈환했다. 외국인투자자들은 이날만 1조원 넘게 국내 주식을 사들였다. 저금리에 따른 위험자산선호현상이 짙어지면서 전세계의 단기성 투자자금(핫머니)가 상대적으로 경제가 양호한 우리나라로 대거 유입될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임수균 삼성증권 연구원은 “QE3 효과로 코스피지수는 당분간 2,100선까지도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유로존 국채매입의 전제가 되는 유럽재정안정화기구(ESM)가 9월 중 제대로 출범될 수 있을지 여부와 정권 교체를 앞둔 미국과 중국의 정치 불확실성 등은 돌발악재로 남아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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