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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익 삐익~ 고래의 대화 "우릴 잡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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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익 삐익~ 고래의 대화 "우릴 잡지 마세요"

입력
2012.09.1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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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저쪽 1시 방향."

12일 오전 10시30분 경북 포항시 호미곶 북서쪽 15km 해상. 그린피스 에스페란자호에서 내려진 두 대의 보트가 동해 저 멀리에서 힘차게 수면을 박차고 오르는 검푸른 점들을 향해 전력질주 했다. 100m쯤 거리가 좁혀졌을까. "우와! 많아, 진짜 많아!" 과학자들과 탐사 참가자들의 탄성과 카메라 셔터 소리가 엔진 굉음 속에서도 또렷하게 들렸다. 기다란 주둥이, 옅은 노란색의 몸체, 흑청색의 날렵한 등지느러미와 꼬리지느러미가 경쾌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차례로 물 밖으로 나왔다 들어간다. 긴부리 참돌고래다. 400여 마리가 1km가량의 행렬을 이룬 채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쉬잇."보트 엔진을 끄고 모두가 숨죽였다. 수중 마이크를 바다 속으로 내린 지 1, 2분쯤 후, "삐익 삐익"하는 휘파람 같은 돌고래 소리가 헤드폰으로 전해졌다. 고래들이 아쉬운 몇 마디를 남기고 멀어지면 다시 보트를 움직여 다가섰다. 돌고래들은 얄밉게도 보트가 만든 물결을 타고 서핑이라도 하듯이 다가오다가도 이내 도망치듯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고래들과의 술래잡기에 정신이 팔린 지 한 시간 가량, 아쉬움을 뒤로 하고 보트는 뱃머리를 돌렸다. 망망대해 한 가운데에 정박한 에스페란자호는 어느새 한참이나 멀어져 희미하게 보였다.

한국일보가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국내 언론으로서는 처음으로 국제환경보호시민단체 그린피스의 에스페란자호 한국연안 고래 탐사에 동행했다. 이번 탐사는 부산 국제 크루즈여객터미널을 출항해 12일 저녁 울산항에 정박하기까지 동해 연안을 오르내리며 진행됐다. 2명의 해양생물학자들과 그린피스 활동가, 일반인 탐사 참가자들은 고래가 출현한 장소와 기온, 풍향을 비롯해 실제 출현한 고래의 종과 개체 수를 기록하고 음성을 녹음했다.

그린피스는 이번 탐사와 캠페인에서 우리 정부의 포경재개방침 발표에 대한 부당함을 지적하고 완전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지난 7월 국제포경위원회에서 과학목적 의 포경 재개 방침을 밝힌 바 있으나 국내외 여론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쳐 "어업인과 환경단체, 국내외 전문가의 의견 수렴을 충분히 거치겠다"며 한발 물러선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우리 정부의 자세는 비판을 모면하기 위한 임시방편일 수 있다는 게 그린피스 측의 생각이다.

한정희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해양캠페인 담당자는 일반인 탐사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선상 프레젠테이션에서 "우리 정부는 여전히 고래로 인한 수산 자원의 피해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고래를 잡아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며 "고래를 죽여 배를 가르지 않고도 조직 샘플 검사나 배설물 조사를 통해 고래가 뭘 얼마나 먹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씨는 또 "정부가 과학포경 대상을 오징어나 물고기를 주로 먹는 돌고래로 특정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안 된다"며 "돌고래를 핑계로 개체수가 급격히 줄고 있는 밍크고래까지 합법적으로 포경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현재 포획이 금지된 밍크고래는 크릴새우 등을 주식으로 하며 어망에 걸려 죽은 것에 한해 울산 등지의 식당에 고래고기로 유통돼 마리당 최대 8,000만원 수준에서 거래된다.

이번 탐사에 참여한 미국 해양생물학자 켈리 뉴먼도 "1900년대 중반 알래스카에서도 범고래가 수산자원에 해를 끼친다는 이유로 대량으로 사냥이 됐지만 범고래 때문에 다른 해양생물 개체수가 줄었다는 과학적인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며 "(수산물 보호를 위한 포경 합법화 주장은) 항상 인간의 남획에 따른 수자원 고갈을 고래에게 뒤집어 씌워 온 것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에스페란자호는 이달 말까지 우리나라에서 포경 재추진 반대 및 참치의 남획ㆍ혼획 근절, 남극해의 해양보호구역 지정 등을 위한 캠페인을 진행한 뒤 대만으로 출항할 예정이다.

■ 에스페란자호는/ 하수 정화시설 갖춘 '바다 위의 환경지킴이'

에스페란자(Esperanza, 스페인어로 '희망'이라는 뜻)호는 레인보우 워리어호, 아틱 선라이즈호와 더불어 그린피스의 대표 조사탐사선이다.

국제환경보호시민단체 그린피스의 상징물답게 배 곳곳에는 환경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조치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취재진을 비롯한 일반 참가자들이 승선하면서 선원들로부터 가장 자주 들었던 당부 중 하나는 "변기에 이물질을 절대로 버려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에스페란자호는 수질 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해 하수 정화 및 재활용 시설을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변기가 막힐 경우 하수구를 뚫기만 하면 되는 여느 화장실과 달리 대대적인 배 수리에 들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설거지에도 최소한의 세제와 물 사용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30여명이 각자 사용한 접시와 식기를 두 개의 그릇에 담긴 세제와 물을 통해 일단 씻어 모은 후 주방에 있는 스팀 세척기로 가져가는 방식이다. 또 주방과 라운지에 있는 냉장고는 오존층 파괴의 주범이 되는 프레온 가스가 아닌 암모니아를 사용했다. 원래 구 소련에서 군함으로 건조된 에스페란자호를 친환경 선박으로 탈바꿈 시키기 위해 무려 2년의 시간이 걸렸다는 게 그린피스측의 설명이다.

에스페란자호는 지구 각지를 항해하며 그린피스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도 적격이다. 1984년 폴란드에서 배를 건조할 당시 빙하의 충격을 견디면서도 빠른 속도를 내는 배를 원했던 구 소련의 까다로운 요구 덕분에 에스페란자호는 서른이 다 돼가지만 아직 건재하다. 각종 환경 감시 및 공해상의 불법 조업 저지 등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헬리콥터 이착륙 시설을 갖추고 보트 6대를 추가 비치했다.

포항=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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