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 신용등급 상향 효과 살리려면 금융기관도 글로벌 역량을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이 최근 상향 조정돼 '글로벌 톱10'에 진입한 것은 무엇보다 국내 금융 분야에 호재다. 한 나라의 '금융 신뢰도'를 상징하는 신용등급이 오른 만큼 금융사에도 이전보다 한 단계 높아진 위상과 환경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신용등급이 좋아진 개인이 더 나은 조건으로 돈을 빌릴 수 있듯이, 금융사들도 더 낮은 금리로 자금 조달이 가능해진 것은 물론 외국인들의 투자 유인도 그만큼 커졌다고 볼 수 있다. 국가신용등급 상향은 금융 인프라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의미이므로, 국내 금융사들이 이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선제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무디스(8월 27일)와 피치(9월 6일)의 대한민국 국가신용등급 상향 이후 국내 금융시장의 변화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달 27일 1,917선이던 코스피지수는 한때 1,800선까지 떨어졌다가 13일 현재 1,950선을 유지하고 있다. 지표물인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도 2.8% 선에서 큰 변화가 없다.
원ㆍ달러 환율이 1,130원대에서 1,120원대로 다소 하락했지만, 신용등급 효과보다는 국제 금융시장 흐름의 영향 탓이 더 컸다는 평가다. 그나마 외국환평형기금채권 가산금리가 70bp(베이시스포인트ㆍ0.01%포인트)대에서 60bp대로 낮아진 게 눈에 띄는 변화로 꼽힌다.
통상 신용등급이 오르면 그 나라의 투자매력도가 높아지면서 증시와 채권시장이 호황을 맞고 통화가치가 상승하는 연쇄 효과를 기대한다. 하지만 요즘 글로벌 경제환경이 워낙 안 좋다 보니 한국의 '나 홀로' 신용등급 상향 효과를 압도하면서 국내 금융시장에 별다른 변화를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중ㆍ장기적인 효과다. 조만간 세계 경제가 바닥을 치고 회복을 노리는 시기, 글로벌 유동성이 새 투자처를 모색할 때 한국의 매력이 본격적으로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지원 키움증권 선임연구원은 "이번 상향 조정으로 이머징마켓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시각이 긍정적으로 변했다"며 "앞으로 위험자산 선호심리가 강화될수록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외국인 매수세도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훈 하나대투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동남아 및 중앙아시아 중앙은행들이 국내 채권 매수에 나선 것은 한국물이 중앙은행의 투자 포트폴리오에도 들어갈만한 등급이 됐다는 의미"라며 "세계적으로 투자 대상이 마땅치 않은 상태에서 우리나라는 적당한 투자처로 여겨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가의 등급 상향이 개별 금융사의 등급을 저절로 올려주는 것은 아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국가 등급은 그 나라의 민간 금융사 등급의 상한선과 같은 의미"라며 "한국이 '더블A' 등급이 된 것과 개별 회사의 등급 상향은 별개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 무디스는 국가 등급 상향 직후 국내 국책금융기관들의 등급만 따라 올렸을 뿐 아직 민간 금융사들의 등급은 조정하지 않고 있다. 피치는 국책금융사들의 등급도 아직 올리지 않았다.
최종구 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은 "전통적으로 국가 등급과 궤를 같이 하던 금융기관의 신용도가 최근 들어서는 갈수록 차별화하는 추세"라며 "국가신용등급 상향 효과를 최대한 누리려면 개별 금융사들도 그에 걸맞은 건전성과 글로벌 역량을 꾸준히 향상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 날개 단 국내은행 해외채권
한국의 신용등급이 '글로벌 톱10'에 진입하면서 시중은행들이 낮은 금리로 해외채권을 발행하는데 잇따라 성공하고 있다. 더불어 조달 통화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12일 국내 은행 최초로 6억위안 규모의 딤섬본드를 3.5% 금리로 발행했다. 딤섬본드는 홍콩에서 외국 기업이 발행하는 위안화표시 채권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무디스와 피치가 최근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을 잇따라 올리면서 한국 채권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인식이 퍼져 발행금리가 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산업은행도 이달 초 10년 만기 7억5,000만달러 규모의 해외채권을 발행했다. 발행금리는 미국 10년 만기 국채수익률(1.59%)에 155bp(bp=0.01%)를 더한 3.14% 수준. 한국이 발행한 10년 만기 해외채권 중엔 가장 낮은 금리다. 양승원 산업은행 국제금융실 팀장은 "국가신용등급이 높아지면 해외자금 조달금리도 함께 떨어져 은행들로선 이익"이라고 말했다. 실제 삼성증권은 외화조달 금리가 30bp 개선되면 8개 상장 은행 이익이 2,532억원(1.5%) 증가하고 순이자마진(NIM)은 1.7bp 개선되는 것으로 추산했다.
농협은행도 11일 미국에서 5년 만기 5억달러 규모의 외화채권을 발행했다. 금리는 미국 5년짜리 국채수익률(0.65%)에 165bp(bp=0.01%)가 붙은 2.30%. 당초 180bp를 제시했지만 170개 기관투자자의 수요가 몰리면서 금리가 더 낮아졌다.
이 밖에 한국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과 외환은행 등의 해외채권 발행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생명, 대한생명, 교보생명 등 '빅3' 생명보험사와 기업은행 등은 당장 채권발행 계획은 없으나, 국가신용등급 상향 조정 덕에 필요하면 언제든 저리로 자금 조달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 금융권 해외개척도 '파란불'
우리나라의 신용등급 상승으로 금융권의 해외 개척에도 가속이 붙을 전망이다. 그 동안 국내 금융사들의 해외 진출이 꾸준히 진행돼 왔지만, 실은 국내 기업들의 해외사업조차 뒷받침하기 버거웠던 게 현실이다. 최근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한일 관계 급랭 이후 국내 기업들이 해외자금 조달 여건 악화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운 것도 해외은행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서였다. 하지만 금융권은 이번 신용등급 상승을 해외시장 개척의 호기로 보고 적극적인 행보에 나섰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 등 금융지주사들은 해외자금 조달 금리가 일본, 중국 등 경쟁국보다 낮아질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신한금융은 이번 기회를 활용해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은 '글로벌 사업 구축'을 본격화한다는 계획 아래 포트폴리오를 구축 중이다. 이미 일본, 베트남, 중국 등에서 현지화 영업을 확대했으며 성장 잠재력이 큰 중소형 은행 인수에도 역량을 쏟는 등 투 트랙 전법을 쓰고 있다. 이달 일본 나고야지점 개설로 신한은행의 해외 네트워크는 61개(14개국)로 늘어 시중은행 중 가장 많은 해외 영업점을 확보했다.
KB금융은 어윤대 회장이 "해외에 진출한 대기업의 금융서비스 지원조차 못 하고 있다"고 강조할 정도로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적이다. 현재 11개 해외 점포를 보유하고 있으며 향후 지속 성장이 예상되는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아시아 시장 공략을 목표로 현지법인 설립, 현지 금융사 인수ㆍ합병(M&A) 등을 적극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우리금융은 해외시장에서의 외형 확대와 함께 위험관리 능력 강화에도 힘쓰고 있다. 신시장 개척, 신수익원 발굴 등 글로벌 사업기반 확충을 위해선 영업 및 자금시장의 불확실성에 대한 분석이 우선이라는 판단에서다. 우리은행은 이미 해외에 13개 지점ㆍ5개 현지법인을 구축했으며, 우리투자증권은 8개 현지법인이 활동 중이다.
하나금융지주는 해외점포 직원 대부분을 현지인으로 채용하는 등 철저한 현지화를 추진하며 소매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올해 외환은행 인수로 하나금융의 해외 네트워크는 22개국 102개 영업망으로 대폭 확충됐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해외지점의 경영진까지 현지인을 고용하는 동반자적 성장모델을 구축함으로써 현지화 전략의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다"고 평가했다.
서병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선진국 수준의 신용등급을 갖춰 금융권의 경쟁력이 확보된 만큼 금융시장이 완벽하지 않은 개발도상국을 적극 공략해 기반을 마련하는 동시에 뉴욕 등 글로벌 허브시장에도 도전해야 한다"며 "특히 현대, 삼성 등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한 국내 기업들이 벌이는 사업을 다각적으로 연구해 지원하는 것도 해외시장 개척의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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