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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패럴림픽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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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패럴림픽 단상

입력
2012.09.13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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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고향 도시의 터미널에서 콧잔등의 땀을 닦고 있었다. 냉방장치가 고장 났는지 터미널은 후덥지근했다. 주말에 피치 못할 일이 있어 잠시 들른 집이지만 일터가 있는 서울까지는 거의 4시간이 넘게 걸렸다. 왕복으로 따지만 하루가 몽땅 없어지는 셈이었고, 실제로 다시 서울에 도착하면 밤이 깊을 터였다. 편의점에서 산 비타민 음료를 한숨에 들이키며 손부채질을 했다. 사람들도 역시 각자가 가진 도구나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텔레비전을 무심결에 보고 있었고, 텔레비전에서는 휠체어에 앉은 아저씨가 진지한 표정으로 탁구를 치고 있었다. 그는 탁구 국가대표였고, 상대팀은 탁구 최강국인 중국이었다. 잠시 부채질을 하는 손목의 움직임을 멈추고, 그들의 손목을 찬찬히 보았다. 탁구공은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의 움직임 또한 강인해보였다.

올림픽이 끝나면 같은 도시에서 패럴림픽이 열린다. 우리에게는 장애인 올림픽이라는 명칭이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올림픽의 열광과 환호가 끝나고 난 뒤 같은 경기장은 조금은 쓸쓸해보였다. 나에겐 뜻하지 않은 사고나 우연 등에 의해 장애를 갖게 된 이들의 좌절과 비참을 함부로 이해하고 글로 쓸 용기가 없다. 우리나라는 2012 런던 패럴림픽에서 금메달 9개를 획득했고, 이는 종합순위 12위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도 제대로 이해할 자신이 없다. 신체의 주요한 불편을 감수하고 그 신체를 가다듬는 정신의 위대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것인가. 동시에 메달 숫자로 순위를 가늠하는 유아기적 습관을 언제까지 지속해야 하는 것일까. 이 또한 자신 있게 쓸 수가 없다.

우리나라 탁구 선수는 중국 선수에게 졌다. 그들은 휠체어에 앉아 힘차게 스매싱 했고, 상대방이 쉽사리 걷어 올릴 수 없는 코너에 탁구공을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의 현란한 움직임에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선후배들과 탁구를 친 적이 있다. 학창 시절에 탁구를 좀 쳐봤다고 자부했는데, 어떤 시인에게 계속해서 졌다. 아깝게 몇 판을 놓치고 오기가 생겨 한두 판 더 도전했지만 스코어 차는 점점 더 벌어졌다. 결국 포기하고 탁구장 앞 호프집에서 맥주나 벌컥 마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던 것도 같다. "포기하면 편해." 이 얼토당토하지 않은 격언이 유행어가 되어 번져나간 적이 있다. 불과 2~3년 전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포기할 것 자체가 남아 있지 않은 정신적 불구가 되어 나의 멘탈은 붕괴되었노라고 선언한다.

터미널에서 본 경기는 패럴림픽 남자 탁구 단체전 결승이었다.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중국 탁구는 강했다. 3대 1로 패하고 선수들은 아쉬워했다. 그런데 이 선수들, 4년 전 베이징에서는 중국 안방에서 중국 팀을 이겼다고 하니, 대단한 승부사들이다. 캐스터가 아쉽지만, 최선을 다한 선수들이 자랑스럽다는 흔한 멘트를 날린다. 터미널에서는 사람들이 도착한 버스에서 쏟아져 나오고, 또 어디론가 쏟아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탄다. 나는 버스가 떠날 시간이 임박한 것을 뒤늦게 알고 조금 허둥지둥했다. 화장실에도 가야하고, 마실 물도 미리 사야 하니까. 또 다시 멘탈이 붕괴될 것만 같았다. 고향의 일은 잘 풀리지 않았고, 다음 주면 다시 4시간을 달려 내려와야 할지도 몰랐다. 꽤 오랜 시간 집중해서 보았던 패럴림픽 생각은 까맣게 잊고, 승강구로 나아간다.

승강구에는 버스에 오르기 전 마지막 인도의 턱은 거칠었고 휠체어가 다닐 수 없는 높이였다, 고속버스는 계단으로 올라야 했다. 생각해보니 차편을 사기 위한 발매기도 키가 컸고, 창구 또한 마찬가지였다. 저 탁구 선수가, 내 고향에서 서울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장애에 맞부딪칠 것인가. 나는 그것을 차마 상상할 수 없어서 눈을 딱 감고 잠을 청하기로 한다. 패럴림픽 매달 순위는 종합 12위라지만, 장애인이 살아갈 수 있는 나라로써 우리는 몇 위에 해당할까. 이런 생각도 감히 더할 수 없어, 나는 그만 깊은 잠에 들고 말았다.

서효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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