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안타깝다. 한국 중국 일본이 영토분쟁에 휘말려 얼굴을 붉히며 싸우는 것을 보면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세 나라는 아시아는 물론이고 세계 어느 무대에서도 중심 역할을 하는 국가들이다. 국제사회의 리더인 세 나라가 서로 이웃한 지정학적 이점은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상대의 발목을 잡는 것은 모두에게 큰 손실이다. 싸움이 반세기도 훨씬 더 지난 낡은 과거사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는 더더욱 할 말이 없어진다.
2차대전과 냉전을 거치면서 영토문제에서 갈등을 겪는 나라들이 적지 않지만 21세기를 사는 지금까지 이렇게 노골적으로 싸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 힘으로 밀어붙인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이다. 세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저마다 자기 영토라고 주장할 근거가 있고, 어느 한 나라가 실효지배하고 있는 이상 전쟁을 하지 않고서는 이를 빼앗거나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그렇다면 국익과 미래지향적 관계를 손상시키지 않는 선에서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국민이 흥분하더라도 이를 말리고 냉철해야 할 지도자들이 오히려 정략적으로 과거를 이용하려 든다면 더 이상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행태를 우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3국간의 분쟁은 최근 발호하는 일본의 극우주의적 행동이 직간접적 원인이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일본은 원자력법을 개정해 핵무장의 길을 터놓는가 하면, 총리 산하 위원회가 우방국인 제3국이 무력공격을 받을 경우 군사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 파문을 불렀다. 전쟁포기와 교전권 금지를 규정한 헌법9조에 대한 해석을 바꿔 사실상 집단적 자위권을 보유토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말에는 무기수출 3원칙을 완화해 무기개발과 수출의 족쇄를 풀었다. 지금 당장 선거를 하면 극우 정치인인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이끄는 일본유신회와 보수 자민당이 압승하리라는 것은 기정사실처럼 돼 있다. 돌아보면 지난해 9월 집권한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집권 1년은 일본의 우경화와 군사대국화에 올인한 기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이 이렇게 나오는 것을 두고 일부에서는 초조감 때문이라고 말한다. 계속되는 장기불황으로 중국에 경제대국 자리를 내주고, 한국에는 턱밑까지 맹렬한 추격을 허용하다 보니 이대로는 더 이상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지킬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 뿐일까.
지난달 리처드 아미티지 전 미 국무부 부장관과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석좌교수는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미국과 일본이 공동 대응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아미티지 보고서 3'이라고도 불리는 이 보고서는 2000년, 2007년 나온 두 번의 아미티지 보고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아시아에서의 핵심 동맹국으로 일본의 가치를 강조한다.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영미동맹 수준의 미일동맹이 필수적이라며 이를 위해 사실상 일본의 재무장을 촉구한다. 2007년 보고서도 일본 자위대 해외파병을 위한 법 제정, 집단적 자위권을 금지한 헌법 개헌, 중국을 제어하기 위한 재무장 필요성 등을 제시했다. 일본이 지금 보이는 행태와 놀랍도록 똑같다.
초당적으로 작성된 일련의 아미티지 보고서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미국의 아시아 외교전략으로 채택된 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골간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일본의 우경화 행보는 아시아에서의 일본의 전략적 가치를 절대시하는 미국을 배경으로 한 것"이라는 분석가의 말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도발은 미국과 일본 공동의 전략적 이익에 따른 계산된 행동일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최근 몇 년 새 급격히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에 비해서는 아직 멀었다. 특히 일본의 대미 외교력이나 미국 조야에서의 일본의 영향력은 한국으로서는 아직 넘기 힘든 장벽이다. 중일 간은 물론 한일간의 싸움에서 미국은 우리편이 아닐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황유석 국제부 부장대우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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