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언제 가시나 했더니,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시원해 보이던 새하얀 쿠션 커버와 커튼이 이젠 보기만 해도 차가운 느낌이다. 가을의 색을 집안에 불러들일 때가 다가온 것이다. 그렇다고 새 가구를 놓거나 커튼을 바꾸기는 부담스럽다. 이럴 때 가을 분위기 물씬 나는 꽃을 활용해보면 어떨까. 화병에 대충 꽂아 테이블 위에 올려두어도 괜찮지만 조금만 신경 쓰면 큰 돈 들이지 않고 근사한 꽃장식으로 가을 기분을 낼 수 있다.
라이프스타일 디자이너 양성기관인 까사스쿨의 허윤경 차장은 “올해는 가을 하면 떠오르는 갈색뿐 아니라 자줏빛이 도는 와인이나 버건디, 부드랍고 상쾌한 올리브 그린이 패션계에서도 유행”이라면서 “꽃과 함께 이런 색감의 제철 과실이나 곡류, 나무껍질, 솔방울, 지푸라기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면 가을의 풍요로움과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플로리스트 카트린 뮐러가 제안하는 프렌치 스타일은 꽃을 쓰지 않고 마른 꽃잎이나 갈대, 부들처럼 말려도 모양이 그대로인 재료로 계절감을 살린다. 이것들을 자연스럽게 한데 묶은 다음 부드럽게 구겨지는 종이로 싸서 세워 놓는 형태다. 꽃을 쓰지 않아 화려한 맛은 적지만, 풍성한 느낌이 가을에 잘 어울려 현관 앞이나 복도, 거실 등 넓은 공간에 놓아두면 오래동안 보고 즐기기에 좋다.
영국 플로리스트 제인 패커는 좀 더 간단하면서도 멋진 꽃장식으로 일본 도시락 통에서 영감을 얻은 ‘벤또 디자인’을 제안한다. 지난 8월을 뜨겁게 달군 2012 런던 올림픽의 꽃다발을 기억하는지? 메달 수상자들이 받은 청초하고 심플한 ‘승리의 꽃다발’이 바로 패커의 작품이다.
‘벤또 디자인’은 납작한 사각 바구니에 칸을 나눠 꽃과 열매 등을 담는 형태. 과일이나 과자 선물 상자로 쓰는 왕골 바구니를 쓰면 더 잘 어울린다. 꽃과 함께 밤이나 솔방울, 수수 등 가을에 흔히 볼 수 있는 곡물이나 과실을 칸칸이 적당하게 채우면 된다. 이때 주재료를 정해 두세 칸 정도에 나눠 담으면 통일감이 느껴져 좋다. 생화를 담을 칸에는 비닐을 깐 다음 수분을 머금는 플로랄 폼을 넣으면 되는데, 드라이 플라워로 만들어도 되는 꽃이라면 자연스럽게 말려도 멋스럽다.
서늘한 바람이 불면, 피부가 먼저 알아채는 것은 수분 부족. 공기는 건조해지고 환기 시간이 짧아지면서 실내 공기도 탁해진다. 이럴 때 흙 없이 물에서 키우는 수경 식물을 방 안에 놓아두면 가습과 공기 청정 효과는 물론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탁월하다.
▩ 카트린 뮐러의 프렌치 스타일
포장지, 라피아끈, 갈대, 부들, 흑미, 조리풀, 조, 페니쿰, 화살나무, 호엽란 각 한 단.
1. 준비한 소재를 다듬어 놓는다.
2. 모든 소재를 한 손에 움켜쥔 채 한 방향으로 기울인 상태에서 한데 묶는다. 각 소재의 느낌을 충분히 살리려면 긴 것 짧은 것을 섞어서 높낮이를 달리해 주는 게 좋다.
3. 묶음 다발 그대로 포장용 종이로 감싼 뒤 라피아끈으로 묶어서 고정하면 된다. 꽃병 같은 데 꽂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맛이 더 잘 살아난다. 호엽란의 큼직한 이파리로 포장지를 둘러 다시 한 번 끈으로 묶어 멋을 내도 좋다.
▩ 제인 패커의 벤또 디자인
사각 바구니(납작한 과일 바구니 또는 왕골로 짠 쟁반), 밤, 계피, 솔방울, 오가피 열매, 수수, 맨드라미, 리시안셔스, 다알리아, 대나무, 마디초, 말채 등.
1. 사각 바구니를 여러 칸으로 나눈 다음 대나무, 마디초, 말채 등을 묶어서 칸칸이 넣는다.
2. 다알리아, 리시얀셔스, 맨드라미 등 꽃들은 줄기를 짧게 자른다.
3. 칸에 맞게 자른 플라워 폼에 다알리아와 리시얀셔스를 촘촘히 꽂아 바구니에 넣는다. 이때 맨드라미는 자른 그대로 자연스럽게 배치해 드라이 플라워를 만드는 것이 좋다.
4. 밤이나 계피, 솔방울 등 꽃과 어울리는 곡식이나 견과류 등으로 빈 칸을 채워준다.
▩ 건조한 가을을 촉촉하게, 수경재배
유리로 된 화기, 수경용 모종, 장식용 자갈, 유리구슬, 수경재배용 하이드로볼
1. 수경용 모종을 화분에서 꺼낸 뒤 흐르는 물로 헹구어 흙과 먼지를 제거한다
2. 얼룩 없이 깨끗하게 씻은 유리 화기 바닥에 하이드로볼을 깔고 원하는 위치에 씻어둔 모종을 놓는다.
3. 빈 곳을 채우는 듯한 느낌으로 조심스럽게 장식용 자갈과 유리구슬을 뿌려 식물이 떠오르지 않도록 고정시킨다.
도움말 및 사진 제공=까사스쿨
이인선기자 kelly@hk.co.kr
■ 꽃장식 재료, 어디서 구입할까?
꽃으로 집안을 꾸미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재료 준비. 꽃을 싸게 구입하려면 꽃 도매시장을 찾는 게 가장 좋다. 꽃 도매시장은 대량 판매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단 미만의 소량은 잘 팔지 않지만, 폐장 두세 시간 전에 가면 원하는 만큼 조금씩 살 수 있다.
서울에서 가장 잘 알려진 꽃 도매시장은 강남고속버스 터미널에 있다. 경부선 영동선을 타는 터미널 3층에 자리잡은 이 곳에서는 생화뿐 아니라 조화, 화기, 포장재, 기타 인테리어 소품까지 꽃장식에 필요한 거의 모든 재료를 판다. 꽃도 국산 품종부터 수입 품종까지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영업하며 일요일은 휴무이다. 밤 12시에 개장해 오후 1시까지 운영한다.
서울의 또다른 꽃 도매시장으로 양재동 화훼 공판장과 남대문 대도 꽃상가가 있다.
양재동 화훼 공판장에 가면 생화는 물론 동양란, 서양란, 관엽식물, 선인장 등 다양한 화초와 관련 용품을 살 수 있다. 영업 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인데, 생화 매장은 더 일찍 열고 일찍 닫아 새벽 3시부터 오후 3시까지다. 일요일에는 문을 닫는 가게가 많다. 지하철 3호선 양재역에서 성남 방면 버스를 타면 된다.
남대문 대도 꽃상가는 지하철 4호선 회현역 4번 출구 방면 대도상가 3층에 있다. 영업 시간은 월~목요일은 새벽 3시부터 오후 3시까지, 금요일과 토요일은 오후 4시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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