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후 소련권에 속하는 국가들의 폐쇄성과 비밀주의는 유명했다. 빛도 빠져 나오지 못하는 블랙홀처럼 진실을 알 수 있는 뉴스나 정보가 일절 흘러나오지 않았다. 1946년 3월 미국을 방문 중이던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한 연설에서 이런 상황을 일러'철의 장막'이 드리워져 있다고 표현했다. 그 후 이 말은 냉전시대의 상징어가 되었다. 공식간행물 행간 읽기 등을 통해 크렘린에서 벌어지는 일을 짐작하는 크렘리놀로지(kremlinology)가 소련연구 영역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도 폐쇄성과 비밀주의 면에서 결코 소련보다 덜하지 않았다. 공산당의 허가 없이는 입국이나 출국이 일절 불가능했다. 서방언론들은 이 같은 중국의 폐쇄ㆍ고립주의를 중국의 대표적 특산물 대나무에 빗대 '죽의 장막'이라고 명명했다. 그런 죽의 장막은 1971년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이 주도한 핑퐁외교로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고, 1990년대 개혁개방이 본격화하면서 거의 완전히 걷혔다.
■ 죽의 장막이 중국 권력 심장부에 다시 드리워졌다. 중국의 차기 최고지도자로 내정된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10여 일이나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온갖 설이 난무한다. 공식 권력승계가 이뤄질 18차 당 대회가 불과 한 달여 남았는데, 핵심 주인공의 소재와 행적이 오리무중이다. 뭔가 심각한 사태가 벌어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두꺼운 대나무 장막을 치고 아무것도 밝히지 않아 궁금증을 증폭 시키고 있다.
■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 비리 사건을 둘러싸고 권력 투쟁설이 파다한 상황이어서 의혹은 한층 더하다. 운동 중 부상이나 교통사고, 지병 등이 아니고 권력암투에 의한 신변 이상이라면 앞으로 중국 정치안정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장쩌민_후진타오 시대를 거치며 정착된 듯했던 권력승계의 틀과 중국식 사회주의 민주도 뿌리부터 흔들리게 된다. 중국의 정치불안은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정치 경제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죽의 장막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지 비상한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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