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2시 서울 삼성동 전력거래소 상황실. 전국적으로 전기가 얼마나 쓰이고 있고, 얼마나 남아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모니터상에 나타난 예비전력 수치는 평균 900만㎾대.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금년도 하계 전력비상수급기간이 오는 21일로 끝난다"면서 "아슬아슬하기도 했고 불안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마무리되고 있다"고 말했다.
시간을 1년 전으로 되돌아가 보자. 초가을 늦더위가 심술을 부리던 작년 9월15일 아침부터 전력사정은 심상치 않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냉방수요가 몰리면서 오전 11시경부터 전력사용량이 급증했고 오후 3시를 넘기면서 예비전력은 24만㎾까지 크게 떨어졌다. 사실상 바닥을 드러낸 셈이었다.
당황한 전력당국은 긴급 부하조정, 즉 순환정전에 들어갔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정전에 앨리베이터가 멈춰서고, 공장가동이 중단되고, 양식장에선 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그야말로 전국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른바 '9ㆍ15 정전대란'이었다. 삼복더위도 아닌 늦더위에 전력이 바닥나 '블랙아웃(대정전)'직전상황으로 치닫고, 제대로 매뉴얼도 없이 우왕좌왕하며 보고계통조차 지켜지지 않는 난맥상이 확인된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1년. 과연 우리나라 전력상황과 시스템은 얼마나 개선 됐을까.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작년 9ㆍ15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전력수요예측의 실패였다"면서 "지난 1년간 수요예측의 정확성을 높이는 데 가장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1년전 당시 전력당국은 최대전력수요를 6,400만㎾로 예측했지만, 실제 기온이 33도까지 오르면서 326만㎾의 추가전력수요가 발생했던 것. 여기에 전력공급능력을 7,071만㎾로 판단했지만 2시간 이내에 가동이 불가능한 발전기 202만㎾와 발전기 출력오차 117만㎾를 감안하지 않아 총 319만㎾의 공급차질이 생겼다. 수요는 적게 예측하고 공급능력은 과대 계산함으로써 결국 600만㎾ 이상의 오차가 생겼고, 이로 인해 전국이 암흑천지 직전까지 간 것이다.
전력당국은 작년 11월 신규 수요예측 프로그램을 개발, 정전사고 당일 발생했던 오차범위(5~10%)를 평균 1.3% 이내로 줄여 나가고 있다. 특히 수급예측에 가장 큰 변수인 폭염, 습도(불쾌지수) 같은 기상요인을 추가로 반영키로 했으며 한국전력과 거래소가 별도로 수요예측을 한 뒤 이를 비교해 보완하는 시스템도 마련했다. 한 관계자는 "이번 폭염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것도 수요예측 프로그램이 개선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블랙아웃의 공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수요예측시스템이 개선됐다고는 하나, 지난달 여러 차례나 예측수요와 실제수요간에 200만㎾의 오차가 생겼을 만큼 정확도가 아직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가장 큰 문제는 발전소의 잦은 고장에 따른 공급차질 가능성이다. 특히 국내 전력공급의 31%를 담당하는 원자력발전소는 올해 들어서만 5차례 고장을 일으켜 정지됐다. 특히 폭염기였던 7~8월에 고장이 집중돼 국민들의 불안감이 크게 증폭되기도 했다. 한국수력원자력측은 "통상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간단한 고장"이라고 말했지만, 가장 전력공급이 안정적이어야 할 시기에 고장이 잦다는 것은 원전관리나 부품안전에 허점이 있다는 방증이다.
궁극적으로는 국민들의 에너지 다소비관행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선 가격(전기요금)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정부와 한국전력은 긴밀한 협의는커녕 힘겨루기와 감정적 대결만 벌이고 있어, 국민들로부터 싸늘한 눈총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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