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상계동 우리금융저축은행 노원역지점은 10일부터 사흘째 수백명의 고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5월 영업정지된 옛 솔로몬저축은행이 우리금융저축은행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문을 열자마자 넉 달 동안 묶여 있던 예금을 찾으러 몰려들었기 때문. 매일 700장의 대기 번호표를 나눠주는데 이미 다음주 목요일까지 번호표가 동났다. 우리금융저축은행은 예금 만기가 돌아온 고객 7,500여명 가운데 절반이 이번 주중 예금을 인출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 당국의 압박에 금융지주회사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인수한 저축은행들이 속속 영업을 재개했지만 정상화가 쉽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예금자들은 문을 열자마자 돈을 빼가고 있는데다 당장은 리스크 관리가 우선이라 대출 신상품을 내놓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은행들이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연계영업에 소극적이라 저축은행은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놓였다.
12일 저축은행 업계에 따르면 5월 영업정지된 4개 저축은행 가운데 미래저축은행을 뺀 솔로몬ㆍ한국ㆍ한주저축은행이 10일 영업을 시작했다. 솔로몬은 우리금융저축은행으로 한국은 하나저축은행으로 한주는 예금보험공사가 소유하고 있는 가교저축은행 예나래저축은행으로 새 이름을 달았다.
이들 영업점은 개점하자마자 뱅크런(예금대량인출)이 벌어지고 있다. 하나저축은행 관계자는 "매일 160억~170억원이 빠져나가고 있는데 만기가 돌아온 예금자의 80% 정도가 돈을 인출해 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뱅크런 이후다. 금융지주사들이 부실 저축은행의 대출자산은 일부만 인수한 반면 예금은 5,000만원 이하 모두를 인수한 탓에 대출보다 예금이 많은 상태다. 때문에 예금이자를 지급하려면 하루바삐 대출을 통해 이자수익을 올려야 한다. 하지만 그간 주요 수익원이었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사업 등 대형사업은 꿈도 꿀 수 없는데다 리스크 관리가 우선이라, 저신용자를 위한 10%대 서민 대출 상품도 내놓기도 쉽지 않다.
일단 궁여지책으로 저축은행들은 정기예금 금리를 시중은행 수준인 연3.2(우리)~3.9%(신한)로 낮춰 예금을 줄여 시간을 벌 생각이다.
하지만 1~2년 내에 대출을 늘릴 뾰족한 방안도 없어 보인다. 4대 금융지주 가운데 작년 3월 가장 먼저 저축은행(삼화)을 인수했던 우리금융저축은행은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렇다 할 신용대출 신상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하나ㆍKB저축은행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나마 신한저축은행이 10%대 신용대출을 선보이고 있지만 공무원, 전문직종사자 등 우량 고객이 대상이라 서민대출과는 거리가 있다. 우리금융저축은행 관계자는 "PF나 신용대출은 저축은행 부실 사태 원흉으로 낙인 찍혀 다시 활성화하기 어려워 저축은행이 공통으로 판매 중인 서민전용 대출상품 '햇살론'만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허용한 연계영업 역시 지지부진한 상태다. 연계영업은 은행 점포를 찾은 고객이 신용도가 낮아 대출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을 때 저축은행 대출 상품을 소개하고 서류접수까지 대신해 주는 것. 은행은 대출금액의 1% 정도를 수수료 수익으로 챙길 수 있고, 저축은행은 고객을 유치할 수 있어 금융당국은 윈윈 전략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아직까지 반응이 신통찮다. 은행들은 "우리도 저신용자를 위한 10%대 대출 상품을 내놓고 있는데다 저축은행 연계영업까지 하려면 업무가 너무 많아져 엄두를 못 내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도 "연계영업을 하겠다고 신고만 하면 당장이라도 가능한데 현재까지는 신청한 곳이 한 곳도 없다"고 말했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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