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혹한 유신독재 정권 시절, 독재에 반대하고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억울하게 수감됐던 고령의 민주화 투사에 앞에서, 검사조차 ‘법의 이름’으로 행해졌던 지난 날의 과오를 사죄했다.
지난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 김상환) 심리로 열린 박형규(89) 목사에 대한 재심 선고 공판이 열렸다. 공판검사인 임은정 검사는 “이 땅을 뜨겁게 사랑하여 권력의 채찍에 맞아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걸어간 사람들이 있었다. 몸을 불살라 그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고 묵묵히 가시밭길을 걸어 새벽을 연 사람들이 있었다.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으로 민주주의의 아침이 밝아, 그 시절 법의 이름으로 그 분들의 가슴에 날인하였던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다시 법의 이름으로 지울 수 있게 됐다”며 긴 소회를 밝힌 뒤, 박 목사에 대해 무죄를 구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위반했던 긴급조치는 위헌이므로 범죄가 저질러졌다고 볼 수 없고, 검사가 당시 제출했던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연루된 학생 데모를 민주화 운동이 아닌 내란 선동으로 평가할 만한 사정들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재판부는 “피고인과 그를 대변한 변호인뿐만 아니라 검사도 재판부의 판단과 동일했다. 장구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기울였을 노력 등이 이 판결을 가능하게 하였음을 고백하면서도 이 판결이 부디 피고인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우리 사법에 대한 안도로 이어지길 소망한다”고 밝힌 뒤 박 목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박 목사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의 간부로 활동하며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를 비방하고 내란을 선동했다는 혐의로 1974년 징역 15년을 선고 받은 뒤 9개월 간 복역했다. 박 목사는 2010년 재심을 청구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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