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100여일 지나면 5년간 국정을 이끌 새 지도자가 선출된다. 새 지도자는 경제위기 극복, 남북관계 복원 등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남북관계에 한정해서 볼 때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신뢰회복일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북한의 핵실험,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 장거리 로켓발사, 천안함-연평도 사태 등 북핵능력은 향상되고 대남도발은 증대했다. ‘5·24조치’로 개성공단사업을 제외한 남북경협이 중단되고 북한의 대중국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해 남북관계 단절을 극복하고 관계설정을 새롭게 해야 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다.
12월 대선 이후 새로운 지도자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 10년,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압정책 5년에 대한 비판적 재평가에 기초해서 새로운 대북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거의 모든 후보들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봉쇄정책에 비판적 견해를 유지하면서 현재의 남북관계를 ‘비정상’으로 보고 있다.
대선 후보들은 포용정책을 업그레이드 하거나 새로운 대북정책 또는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붕괴를 전제로 한 봉쇄정책’을 반대하면서 ‘유연한 대북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유력후보도 있다.
대부분의 대선 후보들이 새로운 대북정책 또는 대북정책의 진화를 공언하지만 대북 강압정책을 선호하는 관점을 유지하는 쪽에서는 지금까지 유지해온 봉쇄정책을 지속하면 북이 손들고 나오거나 붕괴할 것이란 확신을 굽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유력한 대선후보 누구도 강경봉쇄정책을 고수하지 않을 것을 공약하고 있어 다음 정부가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계승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북 포용론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명박 정부 5년의 남북관계 단절은 단순히 5년의 공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어렵게 쌓아놓은 10년 공든 탑을 무너뜨린 것과 같다. 다르게 비유하면 북한변화를 둘러싼 논쟁 중에 변화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독을 깬 것과 같다.
북한 불변론자들은 대북 ‘퍼주기’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본질적 변화가 없다고 불만을 늘어놓았다. 당근보다는 채찍위주의 대북정책을 통해서 북한의 버릇을 고쳐줘야 한다는 것이 북한 불변론자들의 입장이다. 이에 비해 포용론자들은 화해협력의 결과 북한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논리를 폈다.
북한의 변화는 독안의 변화로 독이 넘치거나 깨져야 변화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포용론자들은 인내를 갖고 일관성 있는 화해협력정책을 지속하면 독이 넘쳐 변화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란 논리를 폈다. 하지만 불변론자들은 독을 깨서 변화의 내용을 확인해봐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독을 깬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대화의 상대인 북에는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서 남측의 새 지도자를 기다리고 있다. 김정은은 첫 공개연설인 ‘4·15연설’에서 “평화번영을 바라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손잡고 나갈 것”이라고 남북관계 복원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조선신보는 “서울에 대결정권이 들어선 이후 북남관계는 악화일로를 치달았지만 인민들은 현재의 상황을 ‘일시적인 난국’으로 보고 있다”고 밝히면서, ‘6·15통일시대의 복원’은 북한의 여론이라고 전했다. 북은 남의 새 정부가 6·15 공동선언을 복원하면 제2의 화해협력시대를 열고 냉전구조해체를 위한 대화를 본격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견지한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 복원은 깨진 독을 복원하는 것처럼 어려울 수 있다. 무너진 탑을 다시 쌓는 것이 새 탑을 쌓는 것보다 어려울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남측에 정권이 바뀌면 기존의 합의들이 사문화될 수 있다는 선례가 생기면 합의 도출이 쉽지 않게 될 것이다.
평화정착과 화해협력을 제도화해 나가기 위해서는 정책전환 움직임을 본격화하는 김정은 체제의 실체를 인정하고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남북한의 정권교체를 계기로 신뢰를 회복할 경우, 남과 북 사이에 있었던 불미스런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관계를 설정할 수 있는 대화를 적극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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