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2030 세상보기] 예쁘면서 당당하기까지 하라니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2030 세상보기] 예쁘면서 당당하기까지 하라니

입력
2012.09.12 12:24
0 0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 다이어트 중이에요"라는 이야기는 어딘가 하기 민망한 감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저녁밥 먹는 자리에서 남녀를 불문하고 한두 명 정도는 "저 다이어트 중이에요"라고 밝은 얼굴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 같으면 "뭔 살을 뺀다고 난리야?"하고 눈을 흘겼을 사람들도 "응 그래 다이어트 중이구나"하는 식으로 대수롭잖게 넘어간다.

다이어트란 전처럼 죽기 살기로 살이 빠진 상태로 스스로를 만든 후 그 상태로 영원히 고정시키는 것, 이라는 인식에서 매일 상태가 달라질 수 있고 그 매일의 상태에 따라 오늘 할 바를 하는 연속적 관리의 상태로 그 개념이 변화했다. 아름다움을 구하고 유지한다는 게 원래 이렇게 시지프스의 노동이다. 사람들이 천연 미인이나 원래 살이 찌지 않는 날씬한 사람을 부러워하는 가장 중요한 까닭은, 그들이 그 시지프스의 노동에서 면제받은 자유인이라 그렇다.

재미있는 게, 요즘은 또 사회 분위기가 어느 정도 바뀌어서 공짜로 얻은 건 좀 민망한 일이라는 듯한 느낌이 있다. 원래부터 대나무처럼 마른 애들보다 매일 죽기 살기로 끈덕지게 운동하고 외모에 노력을 들이는 사람들의 '품'을 높이 쳐주는 분위기가 된 것이다. 원래 잘 안 먹는 체질에 살도 안 찌니 먹으려고도, 혹은 다이어트 하겠다고도 돈 들일 일 없는 사람들은 우리 경제에 이바지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맛있는 걸 실컷 사먹고, 그 살을 빼기 위해 각종 운동 센터에 등록하는 사람이야말로 내수 경제에 이바지하는 일등공신이며 자본주의는 자애롭게 그런 사람이 더욱 충성하도록 사랑하고 격려한다.

자본주의가 가장 미워하는 사람은 못생기고 뚱뚱한 사람이 아니라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런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투지를 가지고 투자해서 아름다움을 손에 넣으라는 주문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다. 투지를 가지고 싸워 마침내 아름다움을 손에 넣은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고백한다. "전보다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됐어요", "스스로를 사랑하기 때문에 노력했죠", "저 자신에게 당당하고 싶었어요". 언뜻 보면 건강하고 사랑스럽고 긍정적인 멘트지만 어딘가 계면쩍은 데가 있다. 그러니까 여분의 지방이 붙어 있는 나는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다. 가외 지방을 가진 나에게 나는 당당하지가 않다. 사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2인치 더 작은 청바지 안에 입장할 수 있을 때의 스스로를 더 사랑한다. 2인치 더 둥실둥실한 나보다, 2인치 더 조그마한 나를 사랑한다. 이 차별을 스스로도 어쩔 수가 없다. 될 수 있는 한 모른 척, 또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살아갈 뿐이다. 그러다 어떤 남자와 외모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깜짝 놀랐다. 원래 대한민국 남자의 70%는 자기가 잘생겼다고 생각하고 여자의 70%는 자기가 뚱뚱하다고 생각한다는 우스개는 단순한 우스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키도 조그맣고 얼굴도 새카맣고 눈도 작으면서 이 남자는 "저는 대체로 제 외모에 만족하는 편이에요"하며 비눗방울처럼 상쾌한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만약 이런 여자가 있으면 세상은 그 여자가 미쳤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예쁘건 못생겼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어떤 여자가 자기 외모에 만족하는 꼴을 봐 줄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다. 게다가 전에는 예뻐지고 싶어서 하는 짓들이 그냥 예뻐지고 싶어서 하는 거였는데 요즘은 구구절절 이유까지 붙여야 한다. 당당해지고 싶어서요. 스스로를 사랑하려고요. 그래서 앞으로는 혹시 누가 나에게 왜 다이어트하냐고 물어보면 건강이 어떻고 간이 저떻고 그런 소리 말고 "오롯이 예뻐지려고요"라고만 말해야겠다. 그게 그나마 덜 위선적이다.

김현진 에세이스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