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하고 청량하며 따뜻하고 귀엽다. 그러다 문득 쓸쓸해지고 눈물이 나다가도 거센 비바람 뒤에 내리쬐는 햇살을 맞으며 다시 미소를 짓는다.
13일 개봉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늑대 아이'는 선선한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가을 날씨에 어울리는 감성적인 '판타지 육아 영화'다. 젊은 날 잊지 못할 사랑의 추억과 아련한 이별의 상처, 자연 친화적인 삶의 목가적 낭만과 육아의 기쁨과 고통, 판타지의 달콤한 매혹이 황금비율로 섞였다.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에 실망한 사람이라도 이 영화의 매력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늑대아이 아메와 유키'라는 원제처럼 영화는 늑대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하나(花)는 옷차림은 허름하지만 순정만화 속 비밀스러운 주인공 같은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알고 보니 남자는 전설로만 회자되던 늑대인간. 두 사람은 여느 연인들처럼 사랑을 나누지만 그들 앞의 삶은 순탄치 않다. 딸 유키(雪)가 생기고 아들 아메(雨)이 태어나자 남자는 먼 곳으로 떠나고, 엄마는 아이들의 비밀을 숨기기 위해 시골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감성 멜로 드라마로 시작한 영화는 하나와 늑대인간의 사랑이 신기루처럼 스러지면서 좌충우돌 육아ㆍ전원일기로 변한다. 인적이 드문 시골 외딴집에서 텃밭을 가꾸며 농사를 짓는 건 노역과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천방지축 소녀 유키와 여린 소년 아메를 '사람'처럼 키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유키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감정을 고조시키는 억지스런 장치 없이도 차분하고 꼼꼼하게 육아와 성장의 파노라마를 그려낸다.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가녀리고 귀여우며 발랄한 캐릭터와 수채화처럼 맑은 풍경 연출은 이 영화의 강점 중 하나다.
'늑대아이'에선 양과 음의 세계가 조화를 이룬다. 낯선 곳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불안과 두려움은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과 이웃의 온정으로 해소된다. 달콤한 로맨스 뒤에 피할 수 없는 이별이 찾아오고, 고통스럽고 힘든 육아 끝엔 성장이라는 이름의 열매가 맺힌다. 해맑은 웃음 뒤에 남는 쓸쓸한 여운이 그리 쓰지 않다. 상처와 고통을 어루만지는 것은 결국 사랑이기 때문이다.
'늑대아이'를 연출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디지몬' 시리즈로 감독 데뷔한 뒤 '원피스: 오마츠리 남작과 비밀의 섬'(2005)과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로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는 '늑대아이'가 "아이들에겐 가슴 설레게 하는 즐거운 옛날 이야기가 되길, 젊은이들은 육아의 경이로움과 놀라움을 느끼게 되길, 부모들은 자식들이 커나갔던 성장의 기억을 그리워하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체관람가.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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