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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5. 하늘과 땅과 사람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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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5. 하늘과 땅과 사람 <119>

입력
2012.09.1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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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서방과 나는 세마를 내어 갱갱이에서 서북으로 청주 충주를 거쳐서 원주까지 나흘 길의 고된 여로를 지났고 원주에서 하루 온종일 쉬고 나서 횡성에는 한낮에 당도하였다. 읍치를 지나 동쪽을 향하여 산을 끼고 개천이 흐르는 길을 걸어 소구니골 어구에 당도했다. 우뚝우뚝 솟은 바위와 둥글게 닳은 돌 사이로 계곡물이 기운차게 흘러내렸고 골골마다 웅덩이가 있었다. 우리는 다락 논에서 일하던 농부에게 물어 소구니골을 찾아 북쪽 골짜기로 들어갔다.

십여 리를 올라가 숲이 우거진 골짜기 안쪽에 집이 몇 채 보이고 산비탈에 다락논과 밭이 있으니 개간지로 보였는데 이런 동네라면 누가 살더라도 바깥에서 나그네가 일부러 찾아오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우리가 소나무 울창한 숲 안의 너와집을 기웃거리는데 한 계집아이가 뒷전에서 외쳤다.

누굴 찾으세요?

안 서방이 먼저 아이에게 되묻는다.

여기 어느 집이 박 선비의 집이냐?

어디서 오셨는데요?

아이는 다시 그 물음을 되돌려주었고 이번에는 내가 나섰다.

우리는 예산에서 박 초시를 뵙고 이곳에 아우님이 사신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저는 이 댁 선비님의 동무 되는 사람 아내라우.

안 서방이 다시 아이에게 물었다.

박 씨 성에 도 자 희 자 쓰는 어른 댁이 어디냐?

잠시 기다려보세요.

계집아이가 말하고는 산속으로 뛰어가 나무 사이로 사라졌다. 나와 안 서방은 너와집 방문 앞에 길게 잇댄 툇마루에 잠시 걸터앉아 있었고 잠시 후에 아이가 사라졌던 방향에서 고의 등거리와 짧은 잠방이 차림의 농부가 흙 묻은 맨발로 나타났고 뒤에는 치마를 정강이 위로 치켜 올려 매고 머릿수건을 쓴 아낙이 뒤를 따랐고 계집아이도 깡충거리며 뛰어왔다. 농부가 먼저 당도하여 얼른 일어나 예를 차리고 섰던 우리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신 뉘십니까?

예, 저는 이신통의 아낙입니다. 예산에서 박 초시님을 만나 뵈었더니 이곳을 알려주셔서……

아 그러시군요. 저는 박도희라구 합니다. 이 서방과는 호형호제하는 사입니다.

바쁜 철에 찾아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아니 뭐 이곳은 산간이라 봄 농사가 조금씩 늦습니다. 논과 밭이라고 열 마지기에 온 식구가 달라붙어 일해야 겨우 한 해 농사로 밥을 먹지요. 가족이 함께 살아갈 수 있으니 이것도 저의 분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방에 들어가 앉았고 박도희가 들어와 앉자 서로 맞절하여 정식으로 인사했다. 두런두런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열대여섯의 총각 처녀가 모두 일하다 돌아오는지 저희 부모와 같은 차림이었고, 그들은 흙발이라 안으로 들어서지는 못하고 열린 문 앞에 늘어서서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는 거였다. 박 선비가 방문을 닫고는 형님의 안부를 물었고 내가 고향 소식을 전하니 그도 돌아앉아 눈물을 감췄다. 박 선비는 천정을 올려다보며 긴 한숨을 내쉬고는 지난 얘기를 꺼냈다.

입도했던 그해 말에 이 서방은 영동 옥에서 풀러난 뒤 서일수 행수와 더불어 속리산의 암자에서 심신을 추스르고 있었습니다. 서 행수는 호서 지방의 도인들과 차례로 만나면서 동짓달까지 함께 있다가 이신통이와 하산을 했지요. 신통이 보은에 들러 자기 처남에게서 노잣돈을 받아 호남으로 내려갈 작정이었답니다. 이때에 스승님의 최측근이던 손 도인이 청주에 머물고 있다고 하여 서일수 행수가 청주로 갔지요. 청주의 국사봉 아랫녘에 솔뫼 마을이 있었으니 나중에 우리 도의 큰 은신처가 되었던 곳입니다. 스승님께서는 당시에 기찰을 피하여 괴산에 은거했다가 인제에서도 거처를 세 번이나 옮겨 다닐 무렵이라 측근 도인들도 매우 조심하고 있었지요. 서일수 행수는 이미 몇 해 전에 청주 율봉 역말의 음씨 댁 첫째 딸과 혼인하고 스스로 중신하여 둘째 딸과 스승님의 아드님을 혼인하게 하였지요. 그러한즉 청주에 가서는 장인 댁인 율봉 역말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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