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사건을 놓고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왔다" "역사적 평가에 맡기자"고 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발언에 대해 법조계, 학계 인사들은 일제히 비판적 반응을 보였다. 대선 후보로서 역사인식이나 발언 내용이 적절치 않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우선 발언에 담긴 박 후보의 역사인식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인혁당 사건은 사법부가 당시 판결이 조작됐음을 인정해 재심을 받아들였으며 검찰도 재심 결과에 항소하지 않은 사건"이라며 "독재정권 하에서 일어났던 인권 유린에 대해 반성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임에도 불구하고 (박 후보는) 그에 대한 성찰이 없다는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태헌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박 후보가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틀에 갇혀 시대나 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못한다는 방증"이라고 했고, 손호철 서강대 정치학과 교수는 "퇴행적인 역사의식을 아직도 고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역사적 판단에 대한 고민과 부녀지간의 정이 혼선을 빚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며 "유신 관련 문제에 대해 박 후보 본인의 한계를 확인해준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박 후보의 발언에 담긴 법률 상식의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판결의 주체였던 법관들마저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의 사형 집행을 '한국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규정하는 것이 보편적인 인식이라는 지적이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심은 극히 제한적인 경우에만 가능하고, 재심에서 무죄로 판결이 났다면 앞 판결은 무효화되고 재심 판결이 곧 최종 판결"이라며 '앞으로의 판단에 맡기자'는 박 후보의 발언에 대해 "현행 법적 관점에서 재심에 대한 재심은 없기 때문에 사법 구조에 대해 무지한 발언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인혁당 사건은 재심으로 하나의 최종 판결이 있음에도 박 후보는 '두 개의 판결이 있었다'고 하며 사실을 혼동하고 있다"면서 "사실이 아닌 것을 가지고 논쟁거리로 끌고 가는 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법조인들도 박 후보의 발언이 공인으로서 적절치 않은 것이었다는 데 대체적으로 의견이 일치했다. 고위법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아버지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박 후보 본인으로서는 곤혹스러운 부분이 있지 않았겠느냐"면서도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적절한 발언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도 "심정적으로는 그러려니 하지만 인혁당 사건은 가족의 정 같은 감성적 문제로 접근할 사안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며 "안고 가야 할 부분과 반성해야 할 부분을 가리지 못한 듯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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