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중 폴란드 장교 및 엘리트 4,000명이 집단학살된 카틴숲 사건이 옛 소련의 소행이라는 정보를 미국이 일찍부터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미국 비밀문서들이 10일 공개됐다.
나치 독일과 맞서던 미국이 동맹국 소련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야만적 사건을 모르는 체했다는 의심을 확인하는 결정적 증거라는 평가다. 1939년 독일과 폴란드를 분할 점령한 소련은 폴란드의 국력을 꺾기 위해 이듬해 이오시프 스탈린 당 서기장의 지시로 장교 의사 변호사 교수 등 각계 엘리트 2만2,000여명을 카틴숲 등 소련 영토 세 곳에서 학살했다.
미 국립문서보관소가 공개한 1,000쪽 분량의 이번 자료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독일군 포로였던 두 미군 장교의 암호문 보고서다. 1943년 존 반 블리엇 중령과 도널드 스튜어트 대위는 41년 독일군이 점령한 카틴숲에 끌려가 무수한 시체를 목격했다. 시신이 심하게 부패된 점, 일기ㆍ편지 등 유품의 작성일자가 1940년 봄을 넘지 않는 점 등에서 소련군의 만행임을 확신한 이들은 포로 구출 활동을 하는 미군 정보기구 MIS-X에 이 사실을 암호로 보고했다. 카틴숲 사건 전문가인 앨런 폴은 이 보고서가 미 의회 청문회 기록에도 나오지 않은 것이라며 "폭발적 잠재력을 가진 문건이라 공개를 막은 것 같다"고 AP통신에 말했다.
나치 독일은 당시 미군ㆍ영국군 포로에게 학살 현장을 보여줘 소련 동맹국에 반(反)소련 여론을 일으키려 했지만 미국은 "나치의 소행"이라는 소련의 주장을 계속 두둔했다. 전후에도 미국은 소련과의 냉전이 격화하는 것을 피하려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의회가 1951~52년 관련 청문회를 열고 소련을 국제법정에 제소할 것을 권고했을 때도 조치하지 않았다. AP통신은 "공개된 문서들은 미국이 카틴숲 사건에 대한 방대한 증거를 수집하고도 1990년 소련이 자국 소행임을 인정할 때까지 '진상을 알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음을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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