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축구와 테니스의 종주국이다. 프리미어리그 클럽축구에는 세계 최고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국가대항전인 월드컵 성적은 정반대다. 1966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우승 이후 50년 가까이 4강권에도 오르지 못하고 있다. 테니스도 마찬가지다. 국가대항전 데이비스컵 우승은 1936년이 마지막이다. 1978년 준우승이 그나마 종주국의 체면을 세워주고 있다.
호주, 프랑스, 윔블던, US오픈 등 4대 메이저대회에서도 영국인 남자단식 챔피언은 1936년 프레디 페리 이후 나오지 않았다. 대회 때마다 우승후보로 꼽혔지만 우승컵은 늘 남의 몫이었다. 이쯤 되면 '종주국의 저주'라 할 만하다.
76년간 어둠처럼 배회하던 종주국의 저주에 앤디 머레이(25ㆍ랭킹4위)가 종지부를 찍었다.
머레이가 11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US오픈테니스 남자 단식 결승(우승 상금 약 21억4,600만원)에서 디펜딩챔피언 노박 조코비치(25ㆍ세르비아ㆍ2위)를 세트스코어 3-2(7-6 7-5 2-6 3-6 6-2)로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머레이는 2008년 이후 4차례나 메이저 단식 결승무대를 두드렸으나 번번이 실족하다 4전5기끝에 첫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머레이는 특히 지난 8월 런던올림픽 단식 금메달에 이어 다시 한번 시상대 맨 위에 섰다. 같은 해 올림픽과 US오픈을 석권한 남자 선수론 머레이가 처음이다. 이로써 올시즌 4대 메이저대회는 랭킹 1~4위(로저 페더러, 조코비치, 머레이, 라파엘 나달)가 모두 하나씩을 나눠가졌다.
1세트부터 난타전이었다. 머레이가 게임스코어 4-2로 앞서나가 순항하는 듯 했으나 타이브레이크 24분을 포함해 1시간27분에 걸친 혈투 끝에 12-10으로 세트를 따냈다. 머레이는 2세트에서도 5-2로 여유를 보였으나 조코비치의 막판 추격에 5-5를 허용했다. 흔들릴 법한 순간, 머레이는 침착하게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했다. 이번이 자신의 5번째 메이저 결승무대일 만큼 경험도 쌓았다. 머레이는 2게임을 더 보태 세트스코어 2-0으로 앞서나갔다. 승리의 여신이 손짓을 내미는 듯 했다. 하지만 스러져가던 조코비치가 코트 앞을 점령하는 전술로 3,4세트를 가져가면서 승부는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조코비치는 메이저 우승컵을 5번 차지한 노련미를 앞세워 전세를 뒤집을 기세였다. 하지만 조코비치의 저항은 발목 부상으로 더 이상 맹위를 떨치지 못했다. 운명의 5세트. 머레이가 조코비치의 첫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면서 승기를 잡은 것. 3-0으로 앞서나간 머레이는 조코비치의 추격을 2게임으로 틀어막고 4시간 54분 레이스에 마침표를 찍었다.
영국 언론들도 "이 순간부터 페리를 잊고 머레이를 각인 시킬때가 됐다"라며 흥분을 감추고 못하고 있다. 페리는 8개의 메이저우승컵을 따낸 영국 테니스의 우상이다. 페리는 이런 공로로 20세기를 빛낸 영국 스포츠 스타에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영국인들은 1995년 숨진 페리를 기리기 위해 그의 동상을 윔블던 테니스장 5번 게이트에 세워놓았다. 동상 밑에는 페리의 유해 일부가 묻혀있다.
전문가들은 머레이의 메이저 첫 우승을 이반 렌들(52ㆍ미국)에게 '절반의 공로'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머레이는 지난해 말 렌들을 풀타임 상임코치로 영입했다. 렌들이야 말로 자신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약점인 멘털 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1980년대 중후반을 주름잡은 렌들은 실제 머레이처럼 메이저 결승에서 4번 연속 낙마했으나 5번째 첫 우승 고지에 오른 이후 모두 8번 우승컵을 안았다.
머레이는 경기후 "(렌들이)네가 무척 자랑스럽다고 말한 뒤, 기쁨에 겨운 울음을 터트렸다"고 밝혔다. 옛 테니스 스타의 축하도 홍수를 이뤘다. 보리스 베커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23년의 시차를 두고 우리는 함께 US오픈 정상을 밟았다"는 글을 남겼고 앤드리 애거시도 "머레이는 충분히 챔피언에 오를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패자 조코비치는 "절친 머레이의 메이저 클럽 가입을 환영한다"고 덕담을 건넸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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