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역사 인식이 다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지난 7월 ‘10월 유신’에 대해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하더니 이번에는 인혁당 사건에 대해 두 개의 대법원 판결을 언급하며 거듭 역사의 판단에 미루었다.
우리는 앞서 10월 유신에 대한 그의 인식이 ‘박정희의 딸’이라는 개인차원이라면 몰라도 대통령 후보에 마땅히 요구되는 공적 인식과는 동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그제와 어제의 인혁당 사건 관련 발언은 그의 역사 인식에 대한 의구심을 한층 짙게 했다. “대법원에서 상반된 판결이 나오기도 했고, 그 조직에 몸 담았던 분들의 여러 증언도 있다”는 어제 발언에 미루어 그는 인혁당 사건이 전면적으로 조작된 것은 아니라는 데 집착한 것으로 보인다. 사건 관련자의 한 사람인 박범진 전 의원의 최근 증언 등을 통해 밝혀진 내용이다.
그러나 그런 증언이 있고, 그것이 사건의 진상이라고 하더라도 1975년 대법원이 사형을 확정한 지 18시간 만에 서둘러 형을 집행하기까지 일련의 절차를 더럽힌 사법 살인이나 과잉 형벌의 얼룩은 저절로 지워지지 않는다. 그 얼룩은 2007년 재심에서 형이 집행된 8명의 무죄와 유족에 대한 국가배상이 선고됨으로써 비로소 지워졌다. 또한 이 재심 판결의 확정으로 원판결은 당연히 실효하고, 하나의 판결만 남았다. 그것이 진실이고 상식이다.
박 후보의 ‘상반된 판결’ 언급이 절차법 원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것이라면 그나마 안심할 만하다. 만에 하나 사실상의 헌법중단 상태인 유신 치하의 원판결과 민주화 이후의 재심 판결에 똑같이 ‘정치 상황’이란 잣대를 들이댄 결과라면 실로 심각하다. 10월 유신에 대한 불투명한 인식이 그대로 연장된 것으로서 역사인식 단계를 넘어 대한민국의 사법절차, 나아가 헌정질서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대통령의 으뜸 책무인 ‘헌법 준수’ 의지를 스스로 흐릴 수는 없다. 이런 최소 요건도 못 갖추고는 어떤 자질과 능력, 정책도 무의미하다는 원칙을 박 후보도 이제는 깨달을 때가 됐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