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지하철에 탄 아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꾸 서 있는 날더러 앉으라는 거야, 자리 양보를 해주는 거야. 그때 알았지. 내가 경로우대 노인이구나, 나 늙은 걸 글쎄 나만 모르지 뭐냐.
지하철을 타면 나 역시 고심의 순간을 맞닥뜨리곤 한다. 내 앞에 덜렁덜렁 위태로이 손잡이를 잡으신 그분의 연세가 좀처럼 가늠이 안 될 때, 그래서 안절부절 엉덩이를 들썩여야 할 때, 사실 말이 나와 하는 말이지, 나도 얼마나 그 가늠이 힘들겠는가.
한 십 년 전쯤인가, 1호선을 탔다가 개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내 앞에 선 어떤 노인에게 앉으시라고 자리를 연신 내어드렸음에도 한사코 사양하시며, 튼튼한 다리라며 다음에 내리겠다던 그 노인이 갑자기 안면을 바꾸더니 내게 마구 쌍욕을 해댔던 것이다. 요즘 것들이 이렇게나 싸가지가 없다는 둥, 관절염을 앓는 환자라는 둥, 사람들 다 들으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노인에게 어처구니 없어 말대꾸를 했다가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할머니에게 무슨무슨 계집 소리까지 들었던 나. 그 후로는 머리 흰 사람만 보면 얼씨구나 자동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기계적인 몸이 되고 말았다.
모두가 졸며 가는 익숙한 일상 가운데 변화라면 책이나 신문을 읽던 사람들이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스마트폰에 연신 터치 중이라는 거, 그래서 누가 말을 걸거나 쳐다봐도 눈치는커녕 인기척도 느끼기 힘들다는 거. 자, 밤마다 콘센트에 꽂혀 있는 충전기의 의무란?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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