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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5. 하늘과 땅과 사람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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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5. 하늘과 땅과 사람 <118>

입력
2012.09.1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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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구하지 말고 나를 닦으라, 한 것도 나요, 내 마음을 그 땅에 보내라, 한 것도 나요, 내 몸으로 화생한 것을 헤아리라, 한 것도 나요, 말하고자 하나 넓어서 말하기 어려우니라, 한 것도 나요, 내 마음의 밝고 밝음을 돌아보라, 한 것도 나요, 이치가 주고받는 데 묘연하니라, 한 것도 나요, 나의 믿음이 한결같은가 헤아리라, 한 것도 나요, 내가 나를 위한 것이요 다른 것이 아니니라, 한 것도 나니, 나 밖에 어찌 다른 한울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바로 한울이라 한 것이니라.

부화부순은 우리 도의 첫번째 가는 종지(宗旨)이니라. 도를 통하고 통하지 못하는 것이 도무지 내외가 화순하고 화순치 못하는 데 있느니라. 내외가 화순하면 천지가 안락하고 부모도 기뻐하며, 내외가 불화하면 한울이 크게 싫어하고 부모가 노하나니, 부모의 진노는 곧 천지의 진노이니라. 부인은 한 집안의 주인이니라. 하늘을 공경하는 것과 제사를 받드는 것과 손님을 접대하는 것과 옷을 만드는 것과 음식을 만드는 것과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것과 베를 짜는 것이 다 반드시 부인의 손이 닿지 않는 것이 없느니라. 사람은 천지의 화한 기운이요, 남녀가 화합치 못하면 천지가 막히고, 남녀가 화합하면 천지가 크게 화(和)하리니 부부가 천지란 이를 말함이로다. 여인은 편성이라 혹 성을 내더라도 그 남편 된 이가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절하라. 한 번 절하고 두 번 절하며 온순한 말로 성내지 않으면 비록 그 어떤 나쁜 정도 반듯이 화할 것이니 이렇게 절하고 또한 절하라.

서일수 대행수가 스승님의 아들인 솔봉과 차례로 신도의 첫째 둘째 딸과 혼인하였고 이때로부터 전라도 지역의 포교에 힘을 기우렸습니다. 당시에 이신통은 아직 입도하지는 않았지만 삼남 지방을 떠돌며 광대물주를 하던 중에 서 행수와 가끔씩 만났다고 전해 들었지요. 그러다가 전국적으로 민란이 다시 일어나던 기축년에 이신통은 입도하여 서 행수와 더불어 호서 지방의 도인 대(隊)와 접(接)을 조직하던 중에 영동 민란에 터무니없이 연루되어 뒷돈을 주고 풀려났지요. 그러나 관에서는 이미 서 행수의 행적을 포착하고 뒤를 밟다가 청주 근방에서 체포하였습니다. 그는 사문난적의 포교를 했다는 죄목으로 한양으로 압송되었고 당시에 이신통이 은밀하게 한양에 뒤따라 올라가 그를 뒷바라지했다는 후문이 있습니다만, 제 아우는 잘 알고 있을 거외다.

박인희는 갑오 난리 때에 아우가 농민군을 일으켜 내포 일대를 휩쓸고 위로 북대와 남대가 공주를 공격할 적에 바로 이웃인 홍성을 공격하다 참패하고 쫓기게 된 이야기를 했다. 천지도 병란이 꺾인 뒤에 인근 사방에서 학살당한 양민들의 이야기를 하다가 그는 또 울음을 참지 못하였다. 우리는 그의 권유로 하룻밤을 유숙하고 예산 원마을을 떠났다. 그의 아우가 강원도 횡성 소구니골에 은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은밀히 전해주었고 나는 이제 이신통의 등덜미에 더욱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서 가슴이 콩닥거렸다. 곧 그의 뒤꿈치를 밟을 수 있는 지척의 거리에 다가섰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부여에서 객점 식구들과 만나 집에 돌아와서도 하루 이틀 그냥 보내는 것이 못내 안달이 나서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안성방의 아낙인 부여댁이며 찬모 어멈과 막음이와 장쇠가 있고 밥 부쳐 먹는 곁꾼들도 네댓 명이나 되었지만 아무래도 주인이 자주 오랫동안 집을 비우는 것은 좋지 않을 듯하여 안 서방과 의논을 했다.

어찌 생각하십니까? 이번에는 장쇠만 데리고 갔다 와도 됨 직한데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장쇠도 이젠 많이 컸고 세상 물정도 제법 알게는 되었지만 어찌 아씨와 이 서방의 심정을 알겠습니까? 그리고 천지도 측에서도 저는 우금치 싸움도 겪은 바가 있어 믿어주지 않겠습니까? 이 일이 나라에서 철천지로 미워하는 천지도 일이 아니라면 저는 누가 뫼시고 가든 염려하지 않습니다.

고맙습니다. 부여댁에게도 잘 말씀드려주세요.

우리 식구가 곧 이 댁 혈족인데 무슨 말 하구 말구가 있겠습니까? 저도 월말에 길을 떠날까 작정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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