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 재직 시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사건을 담당해 시정조치를 이끌어 내고, 인텔과 퀄컴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사건 조사를 시작했다. 공정위 역사상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되는 주요 사건과 정책 수립에 깊이 관여하고 공정거래업무 전반에 해박한 지식과 실무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 (중략) … 율촌 합류 후에는 삼성생명과 KDB생명 등의 보험료 담합 건, 롯데 등 대기업집단 계열회사의 부당지원행위 건을 (기업 입장에서)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제약회사의) 리베이트 제공 등 compliance 이슈 등에 대해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공정위 독점감시팀장으로 재직하던 2006년 갑자기 자리를 옮긴 이석준 국제변호사에 대해 법무법인 율촌이 홈페이지에 소개한 프로필이다. 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규제하는 창(槍) 역할을 했던 공직자가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 공직경험으로 쌓은 전문지식과 정보를 토대로 공정위 조사를 받는 기업들을 돕는 방패가 됐다는 얘기다.
이런 모순적 상황은 공정위 심결사건 및 소송과 관련된 법률서비스 시장을 장악한 6대 로펌 모두에서 발견된다. 법정에서 민간기업 편에 선 현장 변호사부터 공정위와의 업무 조율을 위해 활동하는 고문 및 전문위원 모두 공정위 출신으로 채워지고 있다.
주력 변호사는 공정위 출신
소송 실무를 직접 챙기는 변호사 중 공정위 최고위직 출신은 세종의 임영철 변호사다. 판사로 근무하다가 1996년 공정위로 옮겨 심판관리관, 정책국장을 지낸 임 변호사는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 대한전선, 한국야쿠르트 등의 공정위 심결사건을 맡아 진행했다. 같은 법무법인의 백대용ㆍ조창영 변호사도 공정위 사무관 출신이다.
김&장의 공정거래 분야 대표 변호사인 최기록 변호사도 공정위 출신이다. 94~98년 공정위 경쟁국과 하도급국에서 근무한 뒤 바로 김&장으로 옮겼는데, 올 상반기 한국야쿠르트와 삼성정밀화학의 심결사건을 맡았다.
광장이 맡은 공정위 심결사건 7건 중 3건을 맡은 주현영 변호사도 2006년부터 4년간 공정위에서 근무했으며, 사시 33회로 공정위 심결지원2팀장을 지낸 박정원 변호사도 광장이 올해 상반기 수임한 삼성전자(과징금 129억원) 심결사건 해결을 위해 현장을 뛰었다. 공정위 출신은 아니지만 안용석(광장), 윤세리(율촌), 오금석(태평양), 김재영(화우) 변호사는 외부 자문위원 등의 직함으로 공정위와 인연을 맺고 있다.
공정위 퇴직자의 안식처 로펌
공정위 관련 법률서비스 시장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08년 3,729억원이던 공정위의 추징금 부과규모는 지난해 1조164억원으로 3배 가까이 치솟았다. 이처럼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지위를 막론하고 공정위 출신을 영입하려는 로럼들의 경쟁도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공정위 4급 이상 간부직의 퇴직 직후 로펌 이동이 제한되면서, 공정위 사무관 등 중견 간부급 퇴직자를 영입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광장이 공정위 조사국에서 잔뼈가 굵은 박홍기 전문위원을, 율촌이 전재웅 전문위원을 영입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로펌과 공정위를 이어주는 핵심 역할은 여전히 로펌에서 고문 직함으로 일하는 국장급 이상 고위직이다. 김&장에는 공정위 부위원장(차관급) 출신의 김병일ㆍ서동원 고문과, 1급 출신의 이동규 고문이 활동하고 있고, 광장에는 역시 공정위 부위원장 출신의 조학국 고문이 근무하고 있다. 또 세종과 바른에는 각각 안희원(전 공정위 상임위원) 고문과 김상준(전 시장감시국장) 고문이 근무하고 있다. 율촌에는 재벌 및 다국적기업에 대한 엄격한 조사 활동으로 이름을 날린 장항석 고문이 한때 머물렀으며, 태평양에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에 과징금을 매긴 이병주 고문이 관련 업무를 자문하고 있다.
공정위 현직 중에도 로펌과 인연을 맺은 간부가 많다. 이들은 참여정부 시절 민관업무 교환 차원에서 로펌에서 근무했는데, 당시에도 고유 업무와의 이해상충 문제 때문에 논란이 빚어졌다. 이와 관련된 공정위 고위 간부는 한철수(김&장 파견) 상임위원, 채규하(태평양) 대변인 직무대리, 김재중(세종) 시장구조개선정책관, 송상민(김&장) 심판총괄담당관 등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공정위의 전ㆍ현직 간부들이 로펌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게 현실인데, 로펌의 주요 고객인 재벌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엄격히 감시하고 조사할 수 있겠느냐"고 의구심을 나타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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