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선적 화학물질 운반선 '제미니(MT GEMINI)'호의 한국인 선원 4명이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지 10일로 500일을 맞았다. 한국인 선원이 해적에게 억류된 사례로는 최장 기간이다. 게다가 외국인 선원 21명을 모두 풀어줬으나 한국인 선원 4명만 계속 억류하고 있어서 선원 가족들의 걱정이 더 커지고 있다. 싱가포르 선사가 해적과 교섭을 벌이는 한편 우리 정부는 측면에서 지원하고 있지만 선원들의 몸값을 놓고 간극을 좁히지 못해 답답한 줄다리기만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박모 선장을 비롯한 선원 4명의 신변에 별다른 이상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박 선장은 7월 말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선원들이 안전하다고 알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후 선원들과의 연락이 끊겼다. 한 달이 넘도록 연락이 되지 않아 가족들의 불안감은 가중되고 있다.
해적들은 지난해 4월 30일 케냐 인근 몸바사항 남동쪽 193마일(약 310㎞) 해상에서 제미니호를 납치했다. 6개월 후인 11월 30일 해적들은 싱가포르 선사가 보낸 석방금(약 45억원)을 받고 선원 25명을 일단 풀어줬다. 그러나 해적들은 돈을 챙긴 뒤 한국인 선원 4명은 다시 납치했다. 당시 해상에서 헬기로 돈을 떨어뜨리면 해적들이 돈을 받고 24시간 이내에 선원을 태운 배를 남겨놓는 방식으로 맞교환을 했는데 약속을 어긴 것이다. 소말리아에 파병된 다국적연합 해군이 근거리에 있었지만 새벽 시간의 어둠 속에서 철저히 감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적들은 당초 선원들을 풀어주는 대가로 지난해 1월 아덴만 여명작전 때 사망한 동료 8명의 몸값과 한국에 호송된 5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철저히 고액의 석방금을 요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교섭 초기에 비해 격차가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현재 해적들은 선사가 제시한 금액의 수 배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근 유럽연합(EU)을 비롯해 국제사회가 소말리아 해역에 함대를 투입하고 민간 상선에도 무장요원을 탑승시키는 자구책을 강화하면서 피랍 건수는 줄어들고 있는 반면 해적들이 이미 납치한 선원들의 몸값을 최대한 올리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해적들은 선원 구출 작전에 대비하기 위해 내륙 이곳 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은신처를 바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아덴만 여명작전 때와 같은 무력 동원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지만 이처럼 해적들의 저항도 완강해 작전을 펼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 관계자는 "소말리아 정부와 국제사회의 협조를 구하는 한편 선원 가족들을 정기적으로 찾아 진행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며 "조속히 석방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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