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금융권 서민지원책 쏟아지지만 '그림의 떡'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금융권 서민지원책 쏟아지지만 '그림의 떡'

입력
2012.09.10 17:32
0 0

매달 대출이자로 98만원씩 내고 있는 김선경(35ㆍ주부)씨는 최근 금융권에서 금리를 낮춰주고 있다는 소식에 은행을 찾았다. 김씨는 2009년 서울 강동구에 109㎡규모의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1억9,000만원을 대출 받았다. 그러나 올 초 남편이 실직해 대출이자가 버겁다고 느끼던 차라 은행들의 금리인하 소식이 더욱 반가웠다. 김씨가 "6%정도인 대출금리가 1~2%만 낮아져도 매달 30만원 이상 이자가 줄어들어 가계에 보탬이 되겠다"는 생각에 은행에 문의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금리인하는 최고금리 적용 대출자에게만 해당되기 때문에 인하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은행의 금리 인하 발표는 극소수에게만 적용되는 생색내기용"이라며 배신감을 토로했다.

금융권이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서민과 중소기업 등을 지원한다며 각종 지원책을 봇물처럼 쏟아내고 있다. "서민지원을 강화해달라"는 금융당국의 요구가 점점 강도가 높아지고 있는데다, 양도성예금증서(CD)금리 담합 의혹이나 대출서류 조작 등 금융권의 탐욕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높아지자 이미지 개선을 위해 내놓은 고육지책의 성격이 짙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이 최근까지 내놓는 서민우대 상품은 ▦저신용자에 대한 10%대 소액대출 ▦연체이자율 인하 ▦최고대출 금리 인하 ▦프리워크아웃(사전 채무 조정) 활성화 등이 주된 내용이다. 최근에는 하우스푸어를 구제하기 위한 '세일 앤드 리스백'상품도 구상하는 등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품은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금융지주사 회장들과의 모임에서 "금융지주사가 금융시장과 금융산업을 지키고 실물경제 활동을 지원하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해달라"고 요구한 후 급조된 것이어서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6일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이 내놓은 '원화대출 최고 적용금리 연 17%에서 연 14%로 인하'조치는 기존 대출자 가운데 혜택을 보는 대상자가 1% 남짓이다. 앞서 타 은행들이 내놓은 대출 최고금리 인하 역시 SC은행처럼 1%에게만 적용되는 생색내기식이어서 대출자들의 불만이 크다.

3개월 이상 대출금을 연체해 월급이나 재산에 압류가 들어가기 전 은행과 대출자가 계약을 통해 빚을 장기 분할 상환 방식으로 바꾸는 '프리워크아웃'도 적용 대상자가 1%에도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자격 조건이 은행 대출을 이용할 수 있는 정도의 신용도가 있지만 불가피하게 연체가 발생한 사람들로 엄격히 제한되기 때문이다.

10%대의 소액 신용대출 상품도 마찬가지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의 가계대출 중 10% 이상 고금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2%가 안되기 때문에 대출자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이런 상품들이 당장 대출금리를 깎아주는데 그치고 있어 결국 서민들의 부채는 더욱 늘어나는 방식이라 오히려 가계 부채를 더욱 키우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서민 지원 금융상품이 오히려 서민 신용도를 하락시키는 경우도 있다. 저신용ㆍ저소득층의 부담을 줄이고 자립기반조성을 지원한다며 2010년 출시한 햇살론이 대표적인 경우다. 햇살론에는 2금융권의 신용대출이라는 '꼬리표'가 붙기 때문이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신용회사들이 햇살론을 일반 저축은행 신용대출과 똑같이 취급하다 보니, 햇살론 이용시 신용등급이 하락해 신용카드발급이 어려워지는 등 여러가지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 대출로 구입한 주택의 원리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하우스푸어 구제책도 검토단계부터 갈피를 잡지 못하는 실정이다. KB국민은행, 우리은행 등에서 검토하고 있는 '세일 앤드 리스백'이 주택매매가 책정방법, 세금부과, 형평성 논란 등 여러가지 문제점 때문에 정부마저 부정적 평가를 내리는 등 실효성이 떨어지는 대책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금융권은 "대선을 석 달 앞둔 시점에서 당국과 정치권에서 이런저런 주문과 압박이 끊이지 않기 때문에 설익은 대책이라도 서둘러 내놓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하소연한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이번 선거에서 경제민주화가 주요 이슈로 떠오르면서 정치권과 당국의 금융권에 대한 감시와 요구가 높아졌다"며 "서민을 위한 대출상품은 기본적으로 회수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급히 규모를 늘리면 자칫 금융권 동반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