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하순,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열린 K팝 경연대회는 1,500여명의 관객이 환호하는 가운데 30개 팀이 치열하게 경합을 벌였다. 남미 한류 열풍의 진원지 중 하나인 칠레에서는 이미 200여개의 K팝 팬클럽이 있고 2만여 명이 회원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로 대표됐던 한류가 음악으로 외연을 넓혀가면서 우리와 지구 정반대편에 있는 칠레에서까지 커다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고무적인 사례라고 하겠다.
칠레인들이 한국에 대해 이 정도로 높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반해 정작 우리는 칠레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한국 사람치고 값싸고 신선한 칠레산 포도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칠레 농산물이 우리 식탁에 자리 잡고 있다. 수산시장에 가거나 음식점에서 원산지 표시되는 생선을 보면 칠레산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다. 와인을 즐겨 마시는 사람들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 맛도 괜찮은 칠레산을 선호한다. 이처럼 우리 생활 속에 칠레의 많은 제품들이 깊숙이 들어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제품 소비 이상으로 칠레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지 않다.
칠레는 우리나라가 최초로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다. 또 올해는 한국과 칠레가 수교한지 50주년이 되는 특별한 해이기도 하다. 개인이나 국가나 교류는 비슷하다. 우호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면 상대방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갖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부단히 경주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한국 대중문화가 칠레의 젊은 층에 확산될 정도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비해 우리가 칠레에 대해 아는 정도는 부끄러울 정도로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한국과 칠레가 FTA 체결 등으로 급속히 가까워진 배경은 서로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전략적 측면이 무엇보다 크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칠레가 중남미 진출의 거점국가로서의 전략적 가치가 컸다. 칠레 입장에서도 아시아로 시장을 확대해 나가는데 있어 리트머스 시험지로서의 한국시장에 주목했을 것이다.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전략적 이해관계의 일치가 한ㆍ칠레 FTA라는 결과물을 낳았고, 그동안 양국 간의 급속히 확대된 경제적 교류는 이러한 전략이 서로에게 의미 있는 것이었음을 수치로서 보여주고 있다.
양국의 교역량을 살펴보면, 연간 70억 달러에 달할 만큼 비약적으로 커졌다. 우리가 칠레로부터 수입하는 제품도 주목된다. 제조가 53%, 광물이 30%이고, 농산물은 5%, 해산물과 와인이 각각 2% 수준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포도나 와인, 해산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미미하고 구리, 아연, 몰리브덴 등 산업용 핵심원자재의 주요 공급원으로 칠레가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칠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자동차가 한국산일 정도로 고부가가치 제품이 한국에서 칠레로 수출되고 있다. 칠레 수입시장에서 한국의 자동차가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철강판이 2위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 칠레가 보다 돈독한 선린우호관계를 유지 발전시켜 나가려면 경제적 교류만으로는 부족하다. 상대의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칠레는 광부들조차 시를 사랑할 정도로 국민들의 문학적 소양이 높은 국가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두 명이나 배출한 국가로서의 국민적 자부심도 대단하다. 물리적으로 우리와 칠레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의 거리를 좁혀 진정한 우방이 되려면 칠레인들이 갖고 있는 이런 문화적 자부심까지 읽고 헤아리며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침 13일부터 이틀간 서울에서 칠레의 맛과 멋을 알 수 있는 뜻 깊은 행사가 열려 기대된다. 투자시장으로서 칠레가 갖고 있는 잠재적 가치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칠레 문화와 음식을 접할 수 있는 뜻 깊은 행사다. 칠레에 관심 있는 기업가나 국민이라면 한번 '칠레의 맛'이라는 행사에 관심을 갖고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유재웅 을지대 홍보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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