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살인범 승혁의 잔상이 가득한 상태에서 영화 '이웃사람'의 승혁 역을 맡은 김성균(32)을 기다렸다. 멀쑥한 청년이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아니 이렇게 선한 눈빛을 가진 이가 분노를 자아내고 전율을 느끼게 한 연쇄살인마였나.
하정우의 오른팔 역으로 등장한 전작 '범죄와의 전쟁'(2012년)이 "영화로 첫 작품"이라는 그는 "그 영화 개봉되기 전엔 이곳 저곳 오디션을 보고 다녀도 잘 안됐는데 개봉 이후 많은 곳에서 연락이 왔고 '이웃사람'도 찍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성균의 영화 경력이 그렇게 짧다니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영화에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다. 이전엔 연극만 했다. 당시의 캐릭터 분장을 하고 거울 앞에 섰을 때 나도 많이 본듯한 사람을 만난 것 같았다. 대한뉴스 속 전형적인 옛 남자, 우리 아버지들의 젊었을 때 모습이라 익숙한 거 아닐까."
색다른 살인범의 이미지를 찾던 김휘 감독이 그를 낙점한 이유는 시니컬한 웃음이 잭 니콜슨을 닮았기 때문이란다. 고민해 만든 승혁의 캐릭터는 비호감 살인범이다. 맞아 죽더라도 관객이 전혀 동정심이 들지 않을 캐릭터다. 거기에 찌질함까지 덧씌워졌다. "연민이라곤 없는 사악한 인간이면서도 육체적 폭력에 무릎을 꿇고, 귀신을 무서워하는 비겁한 살인범이었다. 피해자의 두려움은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고통만 생각하는, 정말 더러운 인간이다. 촬영장에서 감독은 날 계속 찌질이라 불렀다"
나이 서른 둘에 아들 둘(3세, 6개월)이 있는 가장이다. 자식을 둔 아버지로서 잔혹한 살인범에 몰입해야 하는 건 고통이다. "정말 힘들었다. 딸이 있었다면 더 힘들었을 것이다. 감독이나 강풀 원작자나 나의 공통된 생각은 살인범에게 왜 살인범이 됐을까 하는 사연을 주지 말자였다. 그의 죄를 이해시키고 싶지 않았다. 어떤 것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으로 살인범 캐릭터를 구상했다. 스스로를 인간이 아니라 여겼다. 벌레 같은 이미지를 빌려와 승혁을 저주하고 징그럽게 여겼다."
영화 속 이웃사람들은 범인을 짐작하면서도 그냥 지나치거나 의도적으로 피한다. 당신이라면? 그 또한 이런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어린 시절 살았던 대구 외곽의 집은 큰 마당을 둘러싸고 많은 방들이 붙어있었다. 10가구 정도 함께 세 들어 살았는데 수철이네, 난들이네 하며 너나 없이 어울려 살았다. 남의 아이도 제 새끼처럼 돌봐주며 보호해줬다. 지금은 함께 사는 공동체, 그 정이 사라진 것 같다."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은 그의 초점 없는 눈의 서늘함을 잊지 못한다. "사람을 만날 때 문득 무서울 때가 있었다. 조폭보다 무서운 이들은 정신 나간 듯 멍한 눈빛의 무표정한 사람들이다. 그가 손에 신문지 뭉치라도 들고 있으면 그 안에 칼이 들어있지 않을까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 멍한 눈빛, 이유 없는 폭력의 표정을 담으려 했다."
극 속의 승혁은 지저분하다. 특히 습관적으로 손끝의 냄새를 맡는 장면은 도발적이다. 승혁 맡은 손냄새에서는 살인의 피비린내가 풍겨온다. 그는 "내가 가진 나쁜 습관이 뭔가 생각하다 손냄새 맡는 게 떠올랐다"며 "나쁜 냄새인 줄 뻔히 알면서 자꾸 코를 들이대는 건 그 냄새를 통해 자기가 했던 일들을 계속 확인하기 위함이다"고 말했다. 8월 22일 개봉한 '이웃사람'은 9일 현재 230만명이 관람했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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