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주제의 통일성, 주장의 선명성, 논지의 일관성, 구성의 체계성, 논거의 타당성의 측면에서 대단히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몇 가지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이 쓴 글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비록 단 한 편의 글을 읽었을 뿐이지만 이 글을 쓴 학생의 지적 능력이 이미 평범한 대학생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학생의 글은 첫 번째 단락에서 최근 일어난 시사적 이슈를 간략하게(그리고 성공적으로) 정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다음 두 단락에서 논란의 배경이 되는 논점을 정리하고 두 가지 근거를 들어 사후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에 찬성하는 주장을 펼친다. 논거가 타당하여 딱히 흠잡을 곳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논점이 흔들리지 않고 매우 일관성 있는 서술을 하는 것도 훌륭하다. 보기에는 간단해 보이지만 이는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자신의 주장을 제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상대방의 주장을 검토한 뒤 그것을 다시 반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대단히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전적으로 옳거나 전적으로 틀린 주장은 별로 없다. 어떤 논점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게 되면 대부분의 경우 다른 사람의 주장에서도 검토할 만한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노력을 소홀히 한 채 자신의 주장만을 되풀이하면 독단적이라는 평가를 받기 쉽다. 반대로 상대방의 주장을 면밀히 검토하고 그것을 다시 반박하게 되면 공정하고 객관적이게 보이도록 만드는 효과를 낼 수 있어서 결과적으로 글의 설득력을 높일 수 있다.
이렇듯 학생의 글은 여러 가지 장점을 두루 갖추고 있어 개선할 부분이 별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몇 가지 추가적으로 고려하면 좋겠다 싶은 부분을 지적해 보겠다. 먼저 학생은 사후피임약을 둘러싼 논쟁의 배경을 충분하게 살피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학생이 설명한 것처럼 편리함과 위험함 때문에 논쟁이 끊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와는 전혀 다른 측면에서 찬반 의견을 제출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령 여성계가 사후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요구하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 때문이며, 종교계가 정반대 입장을 취하는 것은 '태아의 생명권'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양측의 주장이 모두 일리가 있으면서도 양립불가능하기 때문에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런 주장들은 단순히 편리함이나 위험함이라는 범주에 담아낼 수 없다. 만약 학생의 글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옹호하면서도 '태아의 생명권' 논거를 반박하는데 성공했다면 더욱 완벽한 글이 되었을 것이다.
상대방의 주장을 검토하는 단계에서 그것을 너무 가볍게 다룬다는 것도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사후피임약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논란이 있는데 단지 두 명의 전문가 의견을 인용하는 것으로 그것을 일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더욱이 그 전문가들의 이름과 소속을 익명으로 처리한 것은 학생 스스로 자신의 글의 설득력을 훼손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에 결코 권할 만하지 않다. 또 사후피임약이 무분별한 성관계를 조장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대응할 수 있는 다른 논리가 얼마든지 있는데도 '교육과 캠페인'이라는, 효과가 의심스러운 대안을 제시한 것 역시 재고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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