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오후 9시46분께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 고교 화장실에서 3학년 A(19)군이 문틀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성적 때문에 괴로와했던 A군은 노트에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글을 남겼다. 이에 앞서 지난달 6일에는 분당구의 또다른 고등학교의 3학년생인 B(19)군도 자신의 방에서 전등에 목을 맸다. B군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치른 6월 모의고사에서 성적이 좋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7일에는 경남 거제시청 화단에서 C(78ㆍ여)씨가 제초제를 마시고 숨진 채 발견됐다. 출가한 외동딸이 있지만 형편이 넉넉지 않아 혼자 살면서 노령연금과 기초생활지원금 등 50여 만원의 정부보조금으로 생계를 유지해왔으나, 사위가 무직으로 있다가 직장을 얻게 되면서 지난 6월부터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몇 달째 방세가 밀리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온 C씨의 손가방에서는 "원망스럽다. 법이 사람을 위해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다"라는 유서가 발견됐다.
10일은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자살예방협회(IASP)가 제정한 '세계자살예방의 날'. 자살예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자살대국'의 오명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우리나라의 자살자는 1만5,566명으로 2000년(6,444명)에 비해 2.4배나 증가했다. 인구 10만명당 자살자는 31.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에서 8년째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울증 등 정신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ㆍ경제적 요인 때문에 무수한 사람들이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있는 게 지금 한국 사회의 병리적 문제다. 특히 과도한 학업부담에 시달리는 청소년층과 실직이나 퇴직 이후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는 노인들의 상황이 심각하다.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 10만명당 자살자는 81.9명. 일본(17.9명), 미국(14.5명) 등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지난해 청소년 사망원인 1위도 자살(13%)로, 청소년 10만명당 1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명인들의 잇단 자살이 일반인의 자살을 부추기는 '베르테르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9일 동아대 의대 윤영현 교수팀의 부산지역 4개 대학 응급실에서 진료받은 자살ㆍ자해 시도자 1,059명에 대한 분석에 따르면, 2008년 10월과 2009년 5월에 발생했던 유명 탤런트와 정치인의 자살사건 이후 2개월간 자해ㆍ자살 시도자는 하루 평균 2명, 1.9명이었다. 나머지 20개월 동안 자해ㆍ자살 시도자는 하루평균 1.4명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급격한 사회변화와 치열한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 도시화ㆍ핵가족화 등으로 인한 공동체 붕괴 등을 자살증가 이유로 지적하고 있다.
하규섭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사회적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 정서적 안정을 줄 수 있는 사회적 지지체계가 무너진 것이 자살급증 이유"라며 "자살시도자, 독거노인 등 자살과 관련된 고위험군에 대한 정부의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현규 생명의전화 교육실장은 "학업문제로 스트레스가 심각한 청소년들의 자살예방을 위해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생명존중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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