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특파원 칼럼] 공자가 지금의 중국을 본다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특파원 칼럼] 공자가 지금의 중국을 본다면

입력
2012.09.09 17:35
0 0

중국에선 길을 건널 때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횡단보도 신호에 녹색등이 켜졌다고 방심하다가는 곧바로 사고를 당하기 일쑤다. 횡단보도 신호등에 상관없이 자동차는 언제든지 어느 방향에서든지 덮쳐올 수 있다.

사거리의 왼쪽 아래 코너에서 오른쪽으로 길을 건넌다고 치자. 우선 보행자의 왼편에서 우회전해 오는 차량들이 위험 일순위다. 중국에서 우회전을 하는 차는 통상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브레이크를 밟는 법이 없다. 보행자는 횡단보도 신호가 녹색등이라도 왼편에서 오는 차를 알아서 잘 확인해야 한다. 무사히 몇 발을 내디뎠다고 안심해서도 안 된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베이징(北京)에서는 좌회전 신호가 따로 없는 곳이 많다. 이 경우 운전자는 직진 신호일 때 요령껏 좌회전을 하면 된다. 문제는 자동차의 직진 신호와 횡단보도 신호등이 동시에 떨어진다는 데 있다. 따라서 보행자는 길을 건너던 중 맞은편에서 좌회전해 오는 차량들과 부딪힐 때가 많다. 횡단보도를 절반도 건너기 전 이젠 10시 방향에서 들이대는 자동차와 만나는 되는 것이다.

그럼 왼쪽만 조심하면 무사히 길을 건널 수 있을까. 아니다. 한국에선 상상하기 힘들지만 중국에선 역주행도 비일비재하다. 왼쪽만 보다가 자칫 오른쪽에서 오는 역주행차를 놓칠 수가 있다. 게다가 자동차보다 더 무서운 게 오토바이와 모터를 단 자전거다. 역주행을 하는 자동차는 역주행인 것을 의식, 속도를 늦춘다. 그러나 오토바이나 모터를 단 자전거는 어느 쪽이 주행 방향이고 어느 쪽이 역주행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결국 길을 건널 때는 초긴장 상태에서 좌우 모두 계속 잘 살펴야만 한다.

이런 상황이면 도대체 횡단보도 신호등이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 오히려 횡단보도 신호등이 빨간불일 때가 더 안전할 때도 없잖다.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의 중국인은 횡단보도 신호등에 상관없이 길을 건너는 게 일상이다. 처음엔 무단 횡단을 일삼는 중국인을 욕했는데 이젠 수긍이 간다.

그러나 아무리 조심을 해도 사고를 완전히 피하긴 힘들다. 며칠 전 아내도 봉변을 당했다. 유치원에 간 아이들을 데리러 녹색 신호등을 확인하고 길을 건너던 때였다. 왼쪽에서 몰려드는 차량들을 피하는데 신경을 쓰다 그만 오른쪽에서 달려오는 역주행 오토바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치인 것이다. 아내는 길에 내동댕이쳐져 정신을 잃었다. 가해 오토바이는 힐끗 뒤를 돌아보곤 그대로 내뺐다. 뺑소니다. 마침 옆에 아내의 지인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자칫 큰 화로 이어질 뻔한 사고였다. 당시 주변에는 중국인도 많았지만 누구도 나서 도와주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중국인의 비정함은 새로울 것도 없다. 지난해 10월 광둥(廣東)성 포산(佛山)시에서는 두살배기 여아가 뺑소니 차에 치인 것을 보고서도 행인 18명이 그대로 지나쳐 여아가 결국 숨진 일도 있다. 2010년에는 한 음대생이 교통사고를 낸 뒤 살아있던 피해자를 아예 살해해버린 일로 충격을 준 적도 있었다. 이후 유사한 일이 계속되면서 음대생의 이름을 딴 '야오자오신 사건'은 이제 일반 명사가 됐다. 지난달 상하이(上海)에선 80대 노인이 피를 흘리며 길에 쓰러져 있는데도 중국인은 아무도 나서지 않고 한 외국인 여성만 도운 이야기가 인터넷에 회자된 적도 있다.

중국인들에게 어떻게 다친 사람을 보고도 외면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면 괜히 돕겠다고 나섰다가 오히려 가해자로 몰릴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잘 아는 사이가 아니면 돕지 않는 게 당연하다는 태도다.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된 것이려니 이해하려 해도 화가 난다. 13억명이 넘는 중국인 중 물론 착한 이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옆에서 누가 죽어가든 말든 나만 잘 살면 그만이란 생각인 듯 하다. 중국의 경제 발전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중국 사회의 실상은 괴물의 모습일 지도 모른다. 공자가 지금의 중국을 본다면 뭐라 할 지 궁금하다.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ik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