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제11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강대진 감독의 '마부'가 특별은곰상을 받은 이후 반세기 동안 한국영화는 국제무대에서 그 존재를 알렸다. 베니스국제영화제는 물론 칸국제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 등을 통해 줄기차게 노크하며 지속적으로 성과를 거두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주요 국제 영화제에의 수상횟수가 5회에 그쳤던 한국영화가 본격적으로 해외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때는 2000년대 이후다. 이때부터 한국영화의 힘은 곧 임권택 이창동 김기덕 박찬욱 홍상수 등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한 감독들의 역량과 동의어가 됐다. 2002년 칸국제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같은 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이창동 감독과 영화배우 문소리가 '오아시스'로 감독상과 신인배우상을 품에 안았다.
2004년은 베를린에서 '사마리아'(김기덕)가 감독상을, 칸에서 '올드보이'(박찬욱)가 심사위원 대상을, 베니스에서 '빈집'(김기덕)이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 3대 영화제에서 3관왕을 차지하며 한국영화를 전 세계에 뚜렷하게 각인시켰다. 또 강수연에 이어, 2007년에는 '밀양'(이창동)의 전도연이 칸국제영화제 최우수여자배우상을 받았다.
특히 베니스영화제와는 인연이 깊었다. 베니스국제영화제와 한국영화는 1981년 이두용 감독의 '피막'이 공식 경쟁부문에 진출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1987년 '씨받이'(임권택 감독)의 주인공 강수연이 최우수여자배우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영화 최초 세계 3대 영화제 주요 부문 수상이라는 영광을 안았다. 그 후 베니스에서 들려오는 수상소식은 한동안 뜸했다. 13년 만에 잠잠하던 베니스 발 소식을 희소식으로 바꾼 이가 김기덕 감독이다.
2000년 '섬'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넷팩상(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 스페셜 멘션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은 이후 2004년 '빈집'으로 감독상(은사자상)을, 8년이 흐른 2012년 자신의 18번째 영화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다. 특히 김 감독은 베니스 영화제에서 유독 뛰어난 경쟁력을 과시한다. 지금까지 경쟁부문에 네 번 진출해 두 차례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베니스영화제는 최근 마르코 뮐러 전 집행위원장 재임 시절(2002~2011)의 좌파 프로그래머들이 떠나면서 권위가 예전만 못하다는 말이 들려오기도 한다. 국내 한 영화제 관계자는 "베니스영화제가 3대 영화제라는 것은 다 옛말"이라고 지적하기도 하고, 베니스영화제 대신 캐나다 토론토영화제를 세계 3대 영화제로 꼽기도 한다. 하지만 토론토영화제가 비경쟁 위주 영화제이고 가장 오래된 전통을 지녔다는 점에서 베니스영화제의 위상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그러나 세계 주요 영화제 수상이 곧 흥행 지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2003년 '실미도'로 1,000만 관객 시대에 들어선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많은 관객수를 동원하는 해외 영화제 수상 감독은 박찬욱이다. '올드보이'로 320만 명, '박쥐'로 220만 명 관객이 들었다. 2007년과 2010년 칸 영화제에서 성과를 거둔 이창동 감독은 '밀양'에서 170만 명의 관객을 모았지만 '시'에서는 22만 명에 그쳤다. 유독 흥행과 거리가 멀었던 김기덕 감독의 역대 수상작 중 최다 관객 동원작품은 17만 명을 기록한 '사마리아'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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