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 가치가 있는 국보급 문화재로 알려진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하 상주본)이 국가에 귀속돼 빛을 볼 전망이다. 2008년 상주본 존재가 드러난 후 복잡한 소유관계로 민ㆍ형사 소송이 이어졌으나 이를 은닉한 채 수감중인 고미술 수집상이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기증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대구고법 제1형사부(이진만 부장판사)는 7일 상주본을 훔친 혐의(문화재보호법 위반)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배모(49)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배씨는 그동안 자신의 무죄가 입증되면 상주본을 국가에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수 차례 표시했다.
이날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가 이 사건의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는 부족해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라는 형사소송의 대원칙에 따라 무죄를 선고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번 판결은 공소사실 인정여부와 관련된 것이지 상주본이 피고인의 소유라든가 피고인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확정하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재판장은 선고를 마친 뒤 피고인 배씨에게 "판결은 공소사실에 대한 것인 만큼 숨겨놓고 있는 훈민정음 상주본을 하루라도 빨리 공개하는 것이 역사와 민족, 인류에 대한 피고인의 책무"라며 "상주본을 빨리 내놓고 전문가의 손에서 관리, 보관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검찰은 법률 검토를 거쳐 상고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대구고법 이상오 기획법관은 "상주본 소유권 여부에 대한 판단이 이뤄지지 않은 만큼 민사재판 결과를 뒤집는 것은 아니며, 민사재판의 효력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덧붙였다.
상주본의 원소유주라고 주장해 온 경북 안동 광흥사 주지 범종 스님은 "이 해례본은 1999년 광흥사 지장전 복장에서 도굴돼 조모씨에게 매도된 것으로 소유주가 광흥사라는 게 법원판결을 통해 확인됐지만 국가에 귀속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상주본이 기증되면 문화재위원회를 열어 문화재로 지정할 계획이다.
상주본은 2008년 피고인 배씨가 집 수리를 위해 짐을 정리하던 중 발견했다며 세상에 공개했지만, 얼마 뒤 상주의 골동품 업자가 배씨가 상주본을 훔쳤다고 주장하면서 소송이 시작됐다. 지난해 대법원 민사소송 판결에서 상주본의 소유권자로 확정된 조씨는 지난 5월 상주본을 되찾으면 문화재청에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기증식까지 마쳤다. 하지만 재판과정에서 증인으로 나온 도굴꾼 서모씨가 "상주본을 광흥사 나한상 복장에서 훔친 후 조씨에게 매도했다"고 증언한 것을 근거로 조계종 총무원측이 국가기증절차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대구=정광진기자 kjcheong@hk.co.kr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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