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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부산에선 지금… '골목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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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부산에선 지금… '골목 인문학'

입력
2012.09.07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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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후 2시께 부산 인쇄업체들이 몰려 있는 중앙동 골목. 후미진 한 켠에 백년어(百年魚)서원이라는 간판을 단 4층 건물이 눈에 띈다. 인문학북카페로 출발해 인문연구소와 커뮤니티 공간까지 갖춘 복합문화시설로 확장된 건물 2층의 테이블 두 곳에서 삼삼오오 인문학ㆍ시사 토론이 한창이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 30, 40대 여성들의 논쟁에 잠든 아기를 업고 선 채로 참여한 주부도 눈에 띈다.

"작지만 재미있는 모임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김수우(53) 백년어서원 대표는 지식의 확대재생산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생활밀착형 인문학이 부산에 서서히 뿌리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은 '수도권공화국'이다. 서울 경기 인천은 남한 전체 면적의 12%에 불과하지만 인구의 절반이 몰려 있다. 100대 기업 본사의 90%, 공공기관의 80%, 문화시설의 35% 이상이 수도권에 있다.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돼 20년이 가까워 오고 행정중심복합도시까지 건설되었지만, 인재는 서울로 모이고 문화담론도 수도권이 아니면 사실상 생산도 발신도 되지 않는 형편이다. 17세기에도 '경향분기(京鄕分岐)'라며 이런 수도권 특권화를 꼬집는 말이 있었을 정도니 어제 오늘 일도 아니다.

그런데 이런 뿌리 깊은 문화서열화에 균열을 내며 통쾌한 역습을 시도하는 도시가 있다. 바로 부산이다.

대중문화에서 부산의 역량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과 그에 이은 드라마, 영화 촬영 붐으로 이미 입증됐다. 거기에 더해 2000년대 중반 이후 서점 거리가 조성되고 지역 출판활동과 다양한 인문학 행사가 열리면서 이번에는 출판, 인문학 바람까지 거세다.

청소년책 전문 서점으로 출발해 공익법인으로 변신, 시민참여형 인문학사업을 벌이며 국제인문학잡지까지 내고 있는 인디고서원. 소외된 곳을 찾아 다니며 희망의 인문학 강좌를 열고 있는 부산대 인문학연구소. 영국 책마을 헤이온와이나 일본 간다ㆍ진보초 책거리에는 못 미치지만 국내에서는 거의 유일한 보수동 헌책방골목. 지자체의 지원으로 빈집에서 탈바꿈한 주민문화공간과 크고 작은 도서관.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등이 세계 유수의 학자들을 초청해 여는 세계인문학포럼 행사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 부산에서 열리는 것도 이런 부산의 유별난 인문학 사랑이 배경에 있다.

눈여겨볼 것은 부산의 인문학 바람이 소수 지식인의 차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70대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연 등 주민의 생활에 맞춤한 골목 인문학 실험이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국내 지자체로는 처음 지역내 출판사들의 좋은 책을 사서 작은도서관에 지원하는 등 부산시의 문화지원 정책에 주목해온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지역에 뿌리 내린 문화운동가들이 발전 모델을 만들어 지자체의 이해와 지원을 이끌어낸 것이 동력"이라고 말했다.

부산은 지금, 나라 안팎의 다양한 상상력을 끌어 모아 "너는 정녕 나를 잊었나"는 응원가만큼 열정적으로 문화 실험 중이다.

부산=채지은기자 cje@hk.co.kr

■ "아지매·할매, 맹자 들으러 퍼뜩 가입시더"

"출판은 도시별로 하는 거예요. 한국이 유독 근대화 과정에서 서울집중형으로 된 게 출판에도 영향을 준 거죠."(출판사 '산지니' 강수걸 대표)

"서울을 가장 흉내 안내는 게 부산이에요. 섬세함은 부족하지만 역동적이고 창의적이죠."(인문학 카페 '백년어 서원' 김수우 대표)

지난 3일 부산 원도심인 중앙동 인쇄골목 한가운데 자리잡은 백년어 서원에서 부산 인문학운동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두 사람을 만났다. 백년어 서원은 강연회나 토론회 독서운동을 주도하는 부산의 대표적 인문학 산실. 김수우(53) 시인이 인문학을 통한 치유와 소통의 공간을 만들고자 2009년 4월 문을 열었다. 지난 1월부터 20개월 과정의 맹자 강좌를 진행하고 있으며, 다양한 강연과 독서운동 등 인문 활동을 벌이고 있다.

강수걸(46) 대표 역시 2005년 2월 서울로 가라는 지인들의 설득을 뿌리치고 부산에서 출판사를 열어 꾸준히 인문ㆍ사회과학 서적을 내놓고 있는 출판인이다. 그가 "안 망하고 버티고 있는 게 다행"이라고 하자 김 대표는 "소명이나 의지가 없이는 내리기 힘든 결정이었다"며 치켜세운다.

서울ㆍ수도권이 아닌 부산에서 어떻게 인문학 바람이 가능했을까. 관(官) 주도가 아닌 민(民)이 문화운동 차원에서 움직인 데 비결이 있다. 곳곳에서 게릴라식 인문학 '전사'들이 출몰해 지역의 문화 풍토를 바꿔 놓았다. 그 '전사' 중 하나가 인디고 서원이다.

2004년 8월 13평 규모의 작은 청소년 인문학서점으로 출발한 인디고 서원은 현재 수요독서회 등 시민참여형 인문학 프로그램, 인디고 유스 북페어나 기타 국제적인 인문기획 사업, 국제인문학잡지 발행을 하는 공익법인으로 발전했다. 2007년 수영구에 4층 건물을 올린 인디고 서원은 서점과 함께 강연ㆍ문화공연을 할 수 있는 청소년 교양공간 역할을 하고 있다. 인문학잡지 '인디고'의 박용준(29) 편집장은 "강연을 하면 400명 이상씩 몰려들어 요즘엔 선착순으로 제한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 역시 중학생 때 인디고 서원 허아람 대표의 인문학 수업을 들었다.

인디고는 지그문트 바우만, 가라타니 고진, 자크 랑시에르 등 해외 학자들과 청소년 대담을 책으로 출간하고 있다. 최근 출간한 슬라보예 지젝 대담집은 영국, 미국, 독일, 이탈리아와 출판사와 계약을 마쳤고 덴마크, 일본과도 계약을 진행 중이다. 서울을 경유해야만 세계와 통한다는 사고방식을 부산의 작은 출판사가 보기 좋게 뒤집어 엎은 것이다.

부산 인문학의 뿌리는 사실 한국전쟁 발발과 동시에 피란민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생겨난 '보수동 헌책방 골목'이다. 50여 헌책방이 밀집한 240m의 이 골목길은 전국에서 거의 유일한 헌책방 골목이다. 수도권에서는 서울의 청계천 헌책방이 자취도 없이 사라졌고 인천 배다리 헌책방 골목이 10여개 서점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다.

'고서점'이라는 간판을 단 보수동 골목의 한 책가게에서는 이날 주인 양수성(39)씨가 1864년에 나온 라는 고서 해제 작업에 열심이었다. 문화기획자로 활동하는 그는 10월 경기 파주출판도시에서 열리는 책 축제인 파주북소리에 이 책을 전시할 계획이다. 그의 뒤로 진가를 알아 볼 이를 기다리는 보물 같은 고서(古書)들이 가지런했다.

쪽방촌 등 소외된 지역을 찾아가는 인문학 서비스로 인문학 대중의 저변을 넓히는 몫을 맡은 건 대학 인문학연구소들이다. 올해 초 범일동 매축지마을에서 70대 이상 할머니들에게 인문학 강의를 한 김경연(41) 부산대 인문학연구교수는 "젊은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빈자리에 외로이 남은 어른들에게 인문학이 무슨 소용 있을까 회의를 했지만 그들만큼 열정적으로 강의를 들어준 분들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용규(48) 부산대 인문학연구소장은 "인구 380만명 정도의 부산은 서울과 달리 곳곳에 옛날 동네 분위기가 남아있다"며 지역 네트워킹이 잘 돼 인문학 전파도 효과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부산 지역의 인문학 바람에 대해 "사회적 책임의식이 강한 80년대 학번들이 같이 살아야 한다, 사회에 뭔가 기여해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지역에 정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보수적이지만 그래서 더욱 열정적인 지역 정서는 부산에서 일고 있는 조용한 인문학 혁명의 보이지 않는 동력이다.

부산=채지은기자 cje@hk.co.kr

■ 부산, 지역 출판의 기린아로

국내 출판사의 95%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자생력 있는 지방의 인문, 문학출판사를 찾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부산은 예외다. 청소년문학과 시집을 주로 출간해온 해성 같은 출판사는 창업 20여년을 헤아린다. 인디고, 산지니의 거점이 부산이라는 걸 뒤늦게 알고 놀라는 사람도 있다.

부산 인접의 경남 김해시 도요마을에 터를 잡은 도요출판사 책임편집위원인 최영철 시인은 이 같은 부산의 출판 전통에 대해 "1980년대에 출판사가 (지자체)허가제로 바뀌면서 이곳에서 시작된 문예운동이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허가를 받기 어려운 출판사들이 부산으로 오는 붐이 생겼어요. 그때 신생출판사들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저도 80년대 중반 부산에서 무크지 <지평> 을 내면서 출판사를 운영한 적이 있고요. 해성(1989년), 전망(1992년)이 그 뒤에 생겨났죠. 주로 문학을 기반으로 한 출판사들이 많습니다." 최 씨는 연극인 이윤택, 소설가 허택씨와 함께 2009년 3월 도요출판사를 열고 문학, 연극 관련 단행본을 출간하고 있다.

김성배 시인이 운영하는 해성출판사는 주로 청소년문학과 시집을 출간한다. 20여 년간 출간한 단행본 종수는 400여권. 이중 기획출판이 95%이상이다. 2005년부터 반년간 청소년잡지 <푸른글터> , 2006년부터 계간 <좋은소설> 을 내며 지역 문화담론을 만들고 있다. 김 시인 역시 "80년대 언론통폐합 뒤 출판사 등록이 허가제로 바뀌며 작가마을, 지평, 세종출판사가 부산에 생겼다"고 말했다. 서정원 시인이 운영하는 전망은 문학전문출판사. '전망'과 '신생' 두 브랜드를 갖고 있고 문학전문 계간지 <신생> 을 발간한다. 올해 초 김지하 시인 시선집 <시김새> 가 이 출판사에서 나왔다. 김지하 시집이 지방 출판사에서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이 같은 토대 위에서 2000년대 들어 일기 시작한 인문학 붐을 타고 산지니(2005년) 인디고서원(2006년) 등 인문출판사들이 부산에 새로 문을 열었다. 산지니는 계간지 <오늘의 문예비평> 을, 인디고서원은 청소년잡지 <인디고잉> 과 인문학잡지 <인디고> 를 발행한다. 부산 경성대출판부는 주디스 버틀러의 <불확실한 삶> , 테리 이글턴의 <시를 어떻게 읽을까> , 로버트 J C 영의 <백색신화> 등 대학출판부로는 드물게 최신 인문학 저서를 번역, 출간해 주목 받고 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 카메라만 대면 그림 아이가! '부산스타일'에 푹 빠져들다

올해 최대 흥행작으로 5일까지 관객수 1,268만명을 넘어선 영화 '도둑들', 지상파 TV 월화 드라마 가운데 시청률 1위를 달리는 MBC '골든 타임', 1990년대 향수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이들 작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답은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상물'이다. 부산은 한국영화 촬영의 3분의 1을 소화해내는 영상물 제작의 메카다.

부산영상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8월말까지 부산에서 촬영한 영상물은 모두 35편(영화 16, 드라마ㆍCF 19편)에 달한다. 현재 흥행 중인 '이웃사람', 450만 관객을 동원한 '연가시', '범죄와의 전쟁' '댄싱퀸' 등이 부산이 낳은 흥행작이다. 이정재 최민식 황정민 주연의 영화 '신세계'는 최근 부산에서 촬영을 마쳤고, 정재영 최다니엘 김옥빈이 주연한 'AM 11:00'은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에서 찍고 있다.

해외 영화 제작자들도 부산을 주목한다. 부산에서 찍은 외화는 지난해 단 한 편뿐이었으나 올해는 상반기에만 '헬로 굿바이'(인도네시아ㆍ감독 티티엔와티메나) '레몬'(중국ㆍ장쟈루이) '운명'(한일 공동제작ㆍ배태수) 등 4편으로 늘었다.

드라마 촬영지로도 올해 들어 더 각광을 받고 있다. MBC '더킹 투 하츠'가 태종대와 하모니크루즈 등을 배경으로 했고, KBS '적도의 남자'는 실로암공원묘원, 영도경찰서, 자갈치시장, 청사포등대, 남부민방파제 등 많은 분량을 부산 일대에서 찍었다. 방송 중인 '골든 타임'과 KBS '해운대의 연인'은 아예 부산에서 올로케이션으로 촬영하고 있다.

부산이 영상물의 배경으로 떠오르는 이유는 빼어난 산, 강, 바다 등 천혜의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근, 현대의 모습을 두루 갖춘 시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1960, 70년대의 모습을 간직한 국제시장, 남포동 일대부터 미국 맨해튼을 연상시키는 해운대의 마천루까지 멀지 않은 지역에서 다양한 모습을 연출할 수 있는 강점을 가졌다.

이 같은 강점을 널리 알리는 데는 1996년 시작해 올해 제17회를 맞는 부산국제영화제가 큰 역할을 했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된 70개국 300편이 넘는 영화를 보기 위해 세계 각국의 영화인들이 부산에 모였다. 눈썰미 예리한 영화인들이 부산의 절경을 지나쳤을 리 없었다.

행정적인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부산영상위원회는 제작팀에서 원하는 촬영 공간을 찾아 행정허가를 받아주고 편의시설까지 지원한다. 스태프들이 골머리를 앓을 수도 있는 숙소 예약, 각종 장비 대여 등도 위원회가 적극적으로 해결해주고 있다. 영화제작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셈이다. 도심 추격장면으로 인한 교통통제 등 불편에도 적극 협조하는 시민의식도 영상물 촬영지로 부산이 급부상하는데 한몫 한다는 게 위원회의 설명이다. 허남식 부산시장은 누누이 "펀드 조성, 스튜디오 리모델링, 스태프 숙소 등 촬영환경 개선 과제들을 놓고 전문가들과 논의해 해결해 갈 것"이라며 영상도시 위상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하드웨어적인 이점말고도 공간을 부산으로 설정하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에게 주는 매력이 있다고 평가한다. 정부의 개방정책 전부터 일찍이 일본 문화를 접했던 이 지역의 문화적 다양성,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부산갈매기'를 열창하며 '롯데'를 외치는 프로야구 응원 등 독특한 문화적 역량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응답하라 1997'을 기획한 이명한 PD는 이 드라마의 배경을 부산으로 정한 이유를 "부산이라는 지역이 주는 포스는 아우라가 느껴질 정도로 매우 강렬하다"며 "사람들은 열정적이고 가요와 팬덤, 스포츠 등 각 장르의 문화적인 역량이 어느 지역보다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산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배우를 뽑을 때도 "'원단 사투리'를 구사할 수 있는지를 유심히 봤다"고 말했다. 이 드라마 여주인공은 "집이 부산"이라고 말하자, "집에 배 있냐. 회는 많이 먹겠다. 동아대 다니는 정보훈 아느냐"라고 묻는 남자를 향해 "뭐 이런 그지 깽깽이 같은 게 다 있노. 부산이 뭐 시골 깡촌인줄 아나. 서울 사는 기 머슨 벼슬이가"라고 면박 준다. 부산을 그저 지방의 한 도시로만 아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문화 주류 서울의 '자만심'을 향한 따끔한 일침이다.

부산의 이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매력에 주목한 것은 가요계다. BAP '노 머시'(No mercy)에는 부산 사투리 랩이 등장한다. 레게풍인 스컬과 하하의 '부산바캉스'도 여름 휴가지로 각광받는 부산의 멋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부산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 상승세를 탄다면 싸이 '강남스타일'을 패러디 한 '부산스타일'이 세계적인 인기를 모을 날도 오지 않을까.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 폐시설 공간 재활용·예술창작 지원… '부산문화의 힘'

지자체 부산의 주머니 사정은 수도권에 비해 물론 열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이 문화도시로 커갈 수 있는 데는 지자체의 문화공간 재단장 사업의 역할도 적지 않다.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은 다닥다닥 붙은 집들과 굽이굽이 이어진 골목길이 그려낸 풍경으로 '한국의 마추픽추'라 불리는 유명세를 타는 곳이다. 지난달 1일 오후 3시 마을의 오래된 공중목욕탕이 '감내 어울터'라는 현판을 새로 내걸었다. 도자기 공방, 카페, 갤러리, 문화강좌시설, 방문객 쉼터 등을 갖춘 주민쉼터로 탈바꿈한 것이다.

시가 8억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4층, 연면적 562㎡ 규모의 공간을 마련했다. 대형욕탕, 사우나실, 수도꼭지, 사물함 등 기존의 공중목욕탕 시설물을 그대로 활용해 색다른 재미를 준다. 예술작가 1명과 주민 2명이 상주하며 관광객들에게 도자기, 천연염색, 목공예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부산 도심 곳곳에서 이처럼 방치된 빈집이나 폐시설이 품격 높은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영도구는 지난해 11월 영선동 백련사 인근 빈집을 수리해 '흰여울 문화마을'을 조성했다. 시가 폐ㆍ공가 개선사업으로 배정한 자금으로 3개 동에 이르는 작업 공간을 완성해 지역 예술인에게 창작 공간을 제공했다.

시는 2010년 3월 중구 동광동과 중앙동 40계단 일대 빈 상가건물을 사들여 예술가들에게 작업공간으로 제공한 '또따또가'사업으로 문화예술 레지던스 사업의 문을 열었다. 이 사업은 예술가들이 일정장소에 상주하면서 예술 창작 활동을 하는 장기 상주 창작 시스템. 수원 행궁동, 파주 헤이리, 제주 저지문화예술인 마을, 거창 연극 마을, 전주 남부시장, 인천 아트플랫폼 등 다른 지자체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예술인 창작 지원뿐 아니라 주민 문화 공간 조성 사업도 활발하다. 운영되지 않는 진구 범천ㆍ범일, 사상구 주례, 남구 문현 가압장 4곳이 '주례문화공터' '문현아트센터' 등으로 탈바꿈해 갤러리, 예술창작교실, 북카페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금정구는 서동시장에 오랫동안 방치된 빈집을 리모델링해 도서관, 강의실 등을 갖춘 '서동예술창작공간'을 만들었고, 7년 전부터 기차가 서지 않는 동구 수정동 부산진역사는 미술 전시공간으로 거듭났다. 부산시 관계자는 "진정한 문화도시는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문화를 향유할 때 가능하다"며 이 같은 공간 재활용 사업을 적극 지원할 뜻을 밝혔다.

부산=강성명기자 sm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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