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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에세이] 대통령에 관한 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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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에세이] 대통령에 관한 팩트

입력
2012.09.0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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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李箱)에 관한 앞서의 언급에 한 마디 더 추가한다. 시인 이상이 남긴 시의 특징이 정작 무엇이었는지를 이 시대의 인문학자 김우창 선생에게 메일링 한즉 이런 답신이 왔다.

"대개의 글은 으레 명령이나 주문을 담고 있습니다. 많은 글은 애국을 하던 정의를 위해 일어서던, 아니면 적어도 눈물이라도 흘리라는 명령을 담고 있습니다. 이상은 이러한 명령, 엄포, 주문을 내놓는 시인이 아니지요. 그 점으로 사람들이 끌린 게 아닌가 합니다. 엄포를 놓는 것이 우리 시나 글들의 특징입니다."

그렇다. 대개의 말과 글이 엄포로 포장되어있다. 특히 지금처럼 대통령 선거를 100일 남긴 시점이 되면 거개가 엄포의 글 전략적인 글로 바뀐다. 왜냐. 국민 모두가 정치평론가로 바뀌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대통령이 목표 아니다"는 안철수의 발언을 머리글로 올린 한국일보(9월 4일자)의 보도는 신선한 특종이다. 팩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작 읽고 싶은 건 엄포 아닌 팩트, '대통령에 관한 팩트'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정작 어떤 자리인가. 300조원이 조금 넘는 1년 예산가운데 대한민국 대통령이 예하장관 손 비틀어 처분할 수 있는 돈은 그 15%, 45조원 정도다. 너나없이 혀 빼물고 덤빌 자리가 못 된다. 그나마 취임 1년의 축하분위기, 끝 1년의 레임덕을 빼면 나머지 3년 가지고 뭘 얼마큼 하겠다는 건가.

대통령이 되려면 민심이나 하다못해 정기(精氣)라도 타고나야 한다는 식의 정치평론가들의 진단 역시 예의 엄포다. 재선에 오른 빌 클린턴 대통령의 득점전략이 뭐였던가. 당시 민주당 측 대선총책이 백악관 TV사진기자들한테 머리 숙여 주문한 건 "클린턴의 허벅지 털과 구렛나루를 제발 많이 찍어 달라"였다. 유권자의 반이 여성 표임을 감안, 섹스어필을 표로 연결 짓기 위해서다. 클린턴 본인도 같은 기간 툭하면 반바지를 입었다. 그의 재임 8년을 백악관을 출입하며 내가 목격했던 팩트라서 자신 있게 하는 말이다.

대통령은 정치평론가들의 요구처럼 반드시 성현군자 형(型)일 필요도 없다. 링컨 하면 효심과 신앙심이 깊은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대통령에 취임하던 날 그는 생부를 초청하지도 않았다. 18세까지 말처럼 부려먹던 아버지에 대한 원한 때문이었다. 정작 능력 있는 대통령은 2류 배우출신 레이건이었다. 철권의 대명사 전두환 대통령한테 그 시대 영세업자들이 박수를 보낸 것과 같은 이치다. 레이건이 전대미문의 경제호황을 불러왔듯 전두환은 물가를 잡았기 때문이다.

워터게이트로 물러난 닉슨이지만 그가 치적 면에서 미 공화당 역사상 최고치적의 대통령이 된 건 뭘로 설명할 것인가. 그가 훗날 민주당의 클린턴 후보의 선거참모장을 자원한 것은 또 어떡하고. 그렇다. 대통령을 기존의 통념으로 판단할 때는 지났다. 폐암에 걸린 체코의 극작가 겸 시인 하벨 대통령이 수술실에 들어서며 기자의 담배 한 가치를 얻어 물자 그 장면을 TV로 본 시민들이 도처에서 "오우, 노!" 소리를 질렀다는 뉴스는 뭘 말하는가.

대통령에게 가장 필수적인 건 국민의 사랑과 박수라는 의미다. 대통령(또는 후보)을 이래라 저래라 재단해온 평론가들의 허튼 엄포는 이제 제발이다. 후보를 빌려 자신의 정치구도를 펴보려는 그 천박함이여. 자신이 출마한 것도 아닌데 후보를 놓고 왜 그리 엄포를 떤다는 말인가.

안철수가 더듬수를 굴리건 이번처럼 "대통령이 목표 아니다"고 토를 달건, 그를 일단 내버려 둘 아량은 없는가. 안철수 같은 인물의 등장이야말로 우리 헌정사에 비춰 하나의 실험이 아닌가. 이런 말한다고 "당신은 안철수 지지자로구먼"이라 몰아붙이지 말라. 이 또한 엄포니까. 여권 후보한테도 나는 똑같은 기대를 걸고 있으니까. 인문학자 김우창 선생의 지적은 천만번 옳다.

김승웅 전 한국일보 파리 특파원 swkim43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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