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 산책/션 B. 캐럴 지음ㆍ구세희 옮김/살림 발행ㆍ392쪽ㆍ1만5000원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능성이 희박하다. 눈곱만큼이라도 가능성을 높이려면? 영리하게 전략을 짜야 한다. 바늘이 있을법한 모래사장을 골라 간다든지, 모래 속 깊은 바늘이라도 포착할 수 있는 도구를 이용한다든지 말이다. 운도 따라야 한다.
이 책은 지구라는 모래사장에서 진화론의 흔적이라는 바늘을 찾으려 고군분투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책은 지질학 역사를 되짚어 화석이 있을 만한 지층을 먼저 탐사하는 등 영리하게 계획하고 비교적 운도 따랐던 이들의 이야기를 모았다. 이들 덕에 진화론은 과학이론의 대명사가 됐다.
진화론 하면 누구나 영국 과학자 찰스 다윈을 떠올린다. 하지만 진화론은 다윈만의 작품이 아니다. 과학을 몰랐던 탐험가, 호기심 유별난 박물학자, 지역 공장을 조사하던 고고학자, 교수직을 내던진 의사 등 진화론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낯선 땅에서 목숨을 걸고 젊음을 바쳤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나마 꽤 알려진 인물이 알프레드 월레스다. 과학자도 아닌 월레스가 황열병까지 앓으며 4년을 아마존에서 지내고, 배가 난파돼 대서양 한복판에서 죽기 직전에 구조되고, 다시 8년 동안 말레이제도의 섬들을 탐험했다. 목적은 단 하나, 진화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와 다윈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은 여전히 학계에선 논란이다. 이 책은 논란의 결론을 제시하기보다 당시 상황을 소설처럼 들려주는 방식을 택했다.
2004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탐험대는 북극 퇴적층에서 돌덩이 하나를 캐냈다. 바로 그 순간이 진화론의 역사에 기록됐다. 탐험대원의 표현을 빌면 웬 '주둥이 하나가 그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머리는 악어처럼 납작했고, 등엔 물고기처럼 비늘이 달렸다. 지느러미가 있었지만 동물 팔뼈처럼 관절도 있었다. 반은 물고기, 반은 사지(四肢)동물인 이 화석은 틱타알릭 로제. 진화론과 창조론의 논쟁 한가운데서 어류와 육상동물의 중간단계인 이 화석이 홀연히 나타난 그때, 진화론자들은 열광했다.
이 책의 주인공은 그래서 다윈이 아니다. 과학자들조차 잘 모르는 탐험가들을 저자는 "훌륭한 시민이었는지, 이재(理財)에 밝았는지는 모르지만, 존경한다"고 했다. "자신의 일에서 큰 기쁨을 얻었고 그것만으로도 보람 있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최근 고교 교과서에서 시조새 진화 부분을 삭제해달라는 국내 일부 창조론자들의 요청이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판단에 따라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는 소식이다. '깃털 달린 공룡'이 얼마나 치열한 논쟁을 거쳐 진화론 역사에 살아남았는지 이 책은 생생히 보여준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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