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 대회 이틀째인 5일 밤 샬럿의 타임워너 경기장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등장에 흥분과 감동으로 물결쳤다. 클린턴은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임과 민주당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중산층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것임을 천명했다. 48분의 연설이 끝날 무렵 오바마가 예고 없이 연단에 다가서자 클린턴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목례로 예우했다. 15살 어린 오바마는 클린턴에게 여러 차례 허리를 굽혀 답례한 뒤 감사의 포옹을 했다. 이어 두 전ㆍ현직 대통령은 손을 마주 잡고 청중을 향해 민주당 정권 재창출을 다짐했다. 두 정치인이 연출한 이례적인 장면을 숨죽이며 지켜본 청중들은 감격의 박수를 보냈다. 뉴욕타임스는 "클린턴의 정치 인생 중 최고의 순간"이라고 평했다.
이날 클린턴의 연설은 자신의 타고난 정치적 역량과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다른 연설과는 차원이 달랐다. 클린턴은 먼저 오바마를 워싱턴 정치에서 실종된 초당적 협력을 회복시킬 적임자라고 했다. 공화당 정권의 장관(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을 각료로 등용하고, 자신의 부인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앉힌 것을 예로 들며 "민주주의는 피 흘리는 스포츠일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는 공화당을 향해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철학이 너는 너라는 것보다 낫다"며 민주당의 철학이 더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 1961년 이후 공화당이 28년, 민주당이 24년 집권했지만 그 52년간 일자리는 공화당이 2,400만개, 민주당이 4,200만개를 창출한 사실을 거론했다.
클린턴은 공화당이 주장하는 오바마의 경제 실정을 조목조목 반박한 뒤 '문제는 산수야'라고 반복해 말했다. 20년 전 자신의 대선에서 내걸었던 슬로건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의 현대판 구호를 보는 듯했다. 클린턴은 공화당이 산수도 못하는 예로 '오바마 책임론'를 들었다. 그는 이를 "자신들이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오바마가 깨끗이 치우지 않았으니 그를 해고하고 자신들이 다시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논리"라고 비난했다. 클린턴은 밋 롬니 공화당 후보에 대해서도 "산수시험에서 낙제했다"며 "승자 독식의 사회를 원한다면 롬니에게, 번영을 공유하며 함께 사는 사회를 원한다면 오바마에게 투표하라"고 말했다.
클린턴의 연설에서 특이한 점은 화해하기 어려운 이념갈등, 낙태, 동성애 등 문화전쟁을 피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오바마는 전형적인 이념적 인물이나 클린턴은 그렇지 않다"며 "클린턴이 자신의 교훈을 무시해 곤경에 처한 오바마를 방어해주고 전당대회장을 떠났다"고 분석했다. 클린턴 연설 뒤 진행된 롤콜(호명투표)에서 민주당은 11월6일 대선에 나설 후보로 오바마를 공식 지명했다. 6일 밤 예정된 오바마의 후보 수락연설은 뇌우 때문에 야외경기장에서 타임워너 실내경기장으로 옮겨 진행된다.
노스캐롤라이나)=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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