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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고아 없는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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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고아 없는 세상을 위하여

입력
2012.09.06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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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향기 맡으면/멀리 떨어져 있어도/마음은 언제나/그대 곁에 머문다.'일본 고대의 시가집 만요슈(万葉集)에 실려 있는 시다. 고킨슈(古今集)에는 백제의 귀화인 왕인(王仁)이 닌도쿠(仁德) 천황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지은 시가 전해지고 있다.'나니와쯔(難波津)에 피어 있는 꽃이여, 겨울도 지나고 이젠 봄이라고 피어 있는 꽃이여.' 이 꽃이 매화이며 왕인은 매화를 약용으로 가져갔다는 설이 있다.

매화는 한중일 동양 3국에서 유교문화의 상징적인 꽃이지만, 오늘날 매화와 매실에 대한 사랑은 일본이 우리보다 더 짙은 것 같다. 한국인들이 김치를 먹듯이 일본인들은 늘 우메보시(梅干ㆍ매실에 소금을 넣고 절인 요리)를 먹으며 살고 있다. 일본 사회복지법인 '마음의 가족' 이사장 윤기(70)씨의 저서 에는 한국인이 된 지 오래인 일본인 어머니가 말년에 "우메보시가 먹고 싶다"고 말해 놀랐다는 대목이 있다. 아무리 다른 나라에 오래 살아도 체질은 끝내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일본인 어머니가 '고아들의 어머니' 윤학자(尹鶴子ㆍ1912~1968)이다. 본명이 다우치 치즈코(田內千鶴子)인 그녀는 조선총독부 관리였던 아버지를 따라 목포에 왔다가 윤치호 전도사가 1928년에 세운 고아원 공생원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그리고 그와 결혼함으로써 2남 2녀의 어머니이자 3,000여 고아들의 어머니가 된다. 6ㆍ25 당시 남편이 행방불명 된 뒤에도 열과 성을 다해 고아들을 보살펴 한국과 일본정부로부터 모두 훈장을 받은 윤 여사 이야기는 최초의 한일 합작영화 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5월에 결성된 윤학자 여사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회(대표회장 김수환 박종순 이어령)는 탄생 100주년을 맞아 '고아 없는 세상'을 이룩하기 위해 '유엔 세계 고아의 날(UN World Orphans Day)' 제정 추진운동을 벌이고 있다. 10월 29~31일 서울과 목포에서는 한일 양국의 관계인사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제 심포지엄과 평화의 제전 등이 열린다. 10월 31일은 윤 여사의 생일이자 기일이다.

사업회는 유엔이 지난해 '세계 과부의 날'(6월 23일)을 제정했듯이 고아의 날도 적당한 날을 제정해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 한때 지구상에서 가장 전쟁고아가 많았고 유엔과 세계 각국의 원조를 받았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원조국으로 성장해 차별과 편견으로 고통 받는 고아들의 안전과 교육 복지문제 해결에 앞장서겠다는 취지이다. "사랑이 있는 한 인간의 내일은 걱정이 없다"는 게 공생원 설립자 윤치호씨의 말이다. 고아의 날 제정은 사랑과 헌신을 바탕으로 한 국제협력사업이기도 하다.

목포 공생원에는 12년 전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당시 총리가 보낸 매화나무가 고아들과 함께 자라고 있다. 을 본 오부치가 선물한 묘목 20그루는 탈없이 잘 자라 국적을 넘은 사랑의 향기를 더하고 있다. 그가 뇌경색으로 쓰러졌을 때 공생원 원생들은 회복을 기원하는 종이학 1,000마리를 접어 보냈고, 오부치가 타계하자 부인 오부치 치즈코(小淵千鶴子) 여사는 종이학을 관 속에 넣어 남편을 보냈다.

치즈코 여사는 4년 전 공생원을 방문했을 때 '이 나무를 볼 때마다 누군가가 남편 생각을 해 주겠구나. 남편은 참 좋은 선물을 하고 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 글의 맨 앞에 인용한 시와 이어지는 마음이다. 오부치는 김대중 대통령과의 공동선언에서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한다"고 말했던 사람이다.

고대부터 매화를 주고받았던 그 마음과 사랑으로 관계를 발전시켜 한국과 일본이 고아 문제를 비롯한 많은 현안의 해결을 위해 진정으로 함께 협력하는 벗이 되기를 기대한다.

임철순 논설고문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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