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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포퓰리즘이 뭐 어떻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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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포퓰리즘이 뭐 어떻다고?

입력
2012.09.06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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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즈음 여유가 날 때면 밀린 일감을 들고 잠시 머물곤 하는 태국엘, 이 번 여름에도 찾았다. 우기 한 복판인 방콕은 정오가 지날 즈음이면 어김없이 어둑해지고 한 바탕 비가 퍼부을 기색을 보인다. 그러다 저녁 즈음에 가까울 무렵이면 맹렬하게 폭우가 내리기 시작한다. 곧 멎을 비에 익숙한 이들은 잠시 건물의 처마 밑에서 무심히 빗물이 흥건한 길을 내다보며 비가 멈추길 기다린다. 이렇게 들락날락 거리는 우기의 날씨에 젖다보면 한참 시끌벅적한 태국의 정치 논란이 떠오른다. 그 역시 이렇게 주기적으로 오락가락하기를 반복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다지 현지 사정에 밝지 않은 처지에 감히 무어라 나설 형편은 아니지만 태국의 정치 정세에 관해 감을 잡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귀가 밝은 이라면 태국의 정세가 대개 레드 셔츠파와 옐로우 셔츠파 사이의 당파적 분쟁이란 것을 쉽게 짐작할 것이다. 마침 현 정부의 농업 정책을 둘러싼 논쟁 역시 예외가 아닌 듯하다. 흥미롭게도 모기지를 통해 미곡 가격을 보장해주는 현 정부의 농업 정책은, 오락가락하는 시세와 아랑곳없이 안정된 수익을 가져다주는 탓에 많은 농부들에게 환영을 받는 모양이다. 물론 반대하는 이들도 수두룩하다. 수확만 괜찮으면 얼마든지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으니 많은 농부들이 화학비료를 남용하며 생산을 늘리는 데만 치중한다거나 재배작물을 다변화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지속가능한 생태적 농사가 막 자리 잡으려는 판국에 현 정부의 농업정책은 재앙이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 이들도 많다. 대개 야당이 된 옐로 셔츠파를 지지하는 주류 언론이 한 목소리이다. 물론 그들의 결론은 한결같다. 현 정권은 포퓰리즘에 영합한다는 것이다.

포퓰리즘?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어느 정치학자의 말처럼 점차 시민들의 정치행위는 더 이상 어떤 세상에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지난 정권을 심판하는 일로 전락한지 오래이다. 감시와 감사 같은 것이 중요한 정치 행위가 되었을 때 정치를 통해 하는 일은 현 정권의 부패와 무능을 가려내고 심판하며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 된다. 그럴 때 정치는 단기적인 인기를 겨냥해 여론에 호소하는 일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 당장 정권을 잡거나 유지하는 일이 급선무가 될 때 정치행위는 여론조사와 광고 캠페인으로 조직된 정치공학으로 대체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는 이제 거의 모든 곳에서 목격할 수 있는 정치의 일반 논리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걸핏하면 포퓰리즘을 들먹이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포퓰리즘을 비판하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포퓰리즘은 정치의 병리적 현상이기는커녕 정치 그 자체의 원리를 넌지시 비추는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포퓰리즘은 정치가 우리와 그들이라는 이분법을 생산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처지에 놓여있고 또 다른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 모든 차이를 하나로 묶으면서 '공통의 우리'를 만들어 낼 때, 포퓰리즘은 작동한다. 그리고 그렇게 정립된 우리에 상대해 있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 된다. 이를 어려운 말로 타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각자 다른 이들을 공통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로 만들어내는 것은 정치가 해야 할 본래의 임무이다. 그렇기 때문에 포퓰리즘은 바로 그 정치의 기본원리가 실현되는 비뚤어진 방식인지도 모른다. 결국 포퓰리즘을 정치에서 추방한다는 것은 정치 그 자체를 질식시키는 일이다. 그렇지만 포퓰리즘의 해악으로 꼽히는 것들을 제거하면서 '우리'라는 공동의 운명을 살아가는 주체를 어떻게 발명해야할까. 아직 그에 관한 뾰족한 묘책은 없는 듯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을 찾는 일을 포기해서도 안 될 일이다. 시쳇말로 한끝 차이인 포퓰리즘과 진짜 정치 사이의 거리를 좁히지 않는 한, 정치는 영원히 표류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동진 계원예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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