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도료를 만드는 한 기업체에서 색채관련 프로모션을 했다. 우리의 환경에 어울리는 도료 색채를 제안하는 자리인데, 이 발제를 맡은 사람은 미국계 디자인 회사의 인도 여성이었다. 과연 이방인이 찾아내는 한국색의 진정성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궁금해져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먼저 그녀가 보여주는 프레젠테이션의 첫 장면은 전통 건축과 현대 마천루의 결합에 놓여있었다. 전통 건축물들의 먹빛 푸른 기와는 도심 빌딩과 연결되었고, 경복궁 수문장 교대식의 청색 홍색 의복도 회색빛 빌딩 숲속에 살짝 자리 잡았을 뿐이다. 도시의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의 협력적 존재가 지금의 살아있는 한국색임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녀는 거리를 걸으며 더 깊이 색을 통찰할 기회를 찾으려고 했다. 인사동 쌈지길, 북촌의 곳곳과 신사동 가로수길을 걸으며, 색감도 질감도 서로 다르다고 생각해왔던 이질적인 것들의 결합이 주는 세련됨을 찾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일상으로 깊이 침투해 우리의 따뜻하고 정감어린 색을 음식에서 찾았다.
음식의 색은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색이었다. 잠시 우리의 밥상을 떠올려 보았다. 음식에는 맛 뿐 아니라 정이 담겨있다. 그래서 음식의 맛깔스런 색은 공감각이다. 눈으로 보고 코로 맡고, 아삭 후루룩, 그렇게 먹는 소리가 있다. 음식은 마음을 움직인다. 밥상에 놓여있는 콩나물, 시금치, 고사리, 김치 그리고 된장찌개에 흰 밥과 누룽지. 생각해보니 음식의 색이 우리의 색이었다.
음식의 기호는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조리된 상태도 음식을 내놓는 모습도 다르다. 생선회를 보더라도 우리나라 사람은 바로 회를 쳤을 때의 신선한 색감을 맛있게 보지만, 일본인은 회를 적당히 숙성시켜 색이 가라앉아있다. 중국인이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듯 생선도 기름간장 소스에 튀겨 놓고 유난히 광택이 도는 것을 즐긴다.
그러다보니 조명의 색도 다르다. 우리나라 식당이 자연광과 비슷한 조도의 일반 조명을 편하게 생각한다면, 일본식당은 직접조명보다는 한지를 투과시키게 하는 등, 여러 방법을 이용해 간접조명을 선호한다. 중국식당은 회전하는 기름진 음식들에 골고루 빛을 쏘아주기 위해 넓은 면적의 직접 조명을 즐긴다. 좋아하는 음식들이 있고, 그 색을 더욱 효과적으로 보이게 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분명하다.
그녀는 한국색의 아름다움을 먼 과거로부터 추앙하듯 들이대지 않았다. 오래된 우리의 유적에서만 한국미를 끄집어 내지 않았다. 지금 현재의 모습, 거리를 걸으며 음식을 먹으며, 우리의 일상 곁에서 한국의 아름다운 색을 찾아내려 했다. 그녀가 보여주는 화면 속 우리의 색은 자연스러웠고 싱그러웠고 시적인 섬세함마저 느껴졌다. 그녀의 시선과 감성에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대부분 한국의 미를 이야기할 때면 전통을 언급하게 된다. 그런데 변하지 않는 것만을 전통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전통이 아니다. 지금의 시대에 살아 숨 쉬려면 이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 지금의 트렌드를 담아내야 할 것이다. 전혀 다를 것 같았던 전원과 도시가 만나 전원도시를 즐기는 시대이다. 서로 다른 것들의 조합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느낌은 달라진다. 풀과 벌레가 만나 풀벌레가 되듯이 말이다.
그리고 트렌드는 특별한 몇몇 사람에 의해, 특별한 몇 곳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일상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심지어 운동화 끈을 매는 과정에서도,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다양한 분야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임을 주지해야 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익숙해지는 것, 더 이상 박물관의 진열장만을 바라보듯 한국적인 것을 이야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 근원에 대한 성찰로 기분과 영혼을 움직일 수 있는 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금 우리의 변화하는 일상을 담아 다음을 편하게 해주는 색, 가장 자연스럽게 우리의 기분을 이끌어 주는 색, 이방인의 눈에서 관찰된 한국의 색은 변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국색은 전통의 끈을 놓치지 않은채, 과거에 멈추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진화할 것이다.
안진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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