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간 기다렸던 2012 런던 올림픽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10(금메달)-10(종합순위)'을 목표로 했던 한국 선수단은 17일간의 열전에서 금 13, 은 8, 동 7개를 따내며 종합 5위에 랭크,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대회에 참가한 245명의 태극전사들 중에는 목표를 달성해 부와 명예를 한 손에 거머쥔 선수도 있지만 4년 간 흘린 피땀이 허무하게도 불과 몇 분 만에 끝나 버린 안타까운 선수들도 있다. 그러나 메달 획득 여부와 상관없이 태극전사들이 피와 땀으로 만들어낸 감동의 무게는 똑같다.
열정과 환희 속에 감동의 드라마를 연출한 런던 올림픽 축제는 끝났다. 하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꿈에 그리던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는 20여명 남짓에 불과하다. '올림픽 금메달은 하늘이 내려주는 것 같다'는 레슬링 정지현(29ㆍ삼성생명)의 말에는 '기다림의 미학'이 깃들어 있다.
정치적인 색채와 지나친 상업주의를 지양하는 올림픽에서 따낸 금메달은 1년 또는 2년 주기로 열리는 종목별 세계대회의 금메달과는 많이 다르다. 올림픽은 엘리트 운동 선수들이면 꼭 한번 서보고 싶어하는 꿈의 무대다. 올림픽 메달은 4년을 기다려야 하는 '기다림의 미학'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한 종목에서 4년 간 국가대표 자리를 유지하는 것도 힘들지만 세계정상을 지키는 것은 더욱 힘들다. 그래서 올림픽 금메달은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역대 사례를 돌아보면 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 50연승 이상을 달렸던 배드민턴 혼합복식의 김동문-나경민, 41연승을 달렸던 레슬링의 김인섭도 금메달을 손에 넣지 못했다. 비운의 스타라는 꼬리표만 붙였을 뿐이다.
시쳇말로 한국 스포츠에서 올림픽 금메달은 '로또 복권'에 비유된다. 한 마디로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순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물론이요 인생 역전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남자 선수의 경우 병역 혜택은 덤이다. 이런 배경에는 승자 독식의 논리가 깔려 있다. 금메달을 따는 순간 신데렐라가 된다. 스토리가 있으면 더욱 좋다. 비닐하우스로 대변되는 체조의 양학선, 부상 투혼 끝에 정상에 오른 유도의 김재범 등이 대표적이다.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6㎏에서 금메달을 따낸 김현우(24ㆍ삼성생명)는 자신이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 흘린 땀을 모으면 수영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수영장을 채우지는 못해도 그에 못지 않은 땀을 흘린 선수는 많다. 그러나 태극전사 245명 중 대회 기간 내내 이름 석자 한 줄 언론에 노출되지 않고 그들만의 리그를 치른 뒤 쓸쓸히 귀국행 비행기를 탄 선수가 태반이다. 순간의 방심이, 한 번의 실수가 4년 간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 것이다.
하계 올림픽 26개 종목 중 축구 농구 배구 정도를 빼면 대부분 비인기 종목이다. 그들은 프로야구나 프로축구처럼 많은 관중 앞에서 경기를 치러 본 경험이 별로 없다. 항상 음지에서 묵묵히 뛰었을 뿐이다. 그들은 올림픽 시즌이 돼 언론사들의 취재경쟁이 빗발치면 오히려 어색해 하기도 한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돼서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거나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에 한 때 우쭐했던 치기(?)는 이제 접고 4년 뒤를 생각해야 한다. 스포트라이트는 '한 여름 밤의 꿈'과 같다. 런던 올림픽이 막을 내린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대중은 벌써 그들을 잊어가고 있다. 대중의 망각증이 특별한 현상도 아니다. 항상 그래왔다. 국위를 선양한 태극 전사들 대부분은 이미 일상으로 돌아가 태릉선수촌에 복귀했거나 소속팀에서 다음 달 열리는 전국체전을 준비하고 있다.
배드민턴 남자단식에서 아쉬운 4위에 그친 이현일은 잊혀져 가는 선수가 되는 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고 했다. 하지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 해도 이제는 '잊혀진 선수'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리고 다시 4년 뒤 올림픽을 준비해야 한다. 축제는 끝났다.
여동은 스포츠부장 dey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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