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만들어 낸 '불황일 때 투자하라'는 기업가 정신이 한국 경제에서 사라지고 있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경기가 회복되기 9개월 전부터 공격 투자에 나섰던 한국 기업들이 요즘엔 회복세가 확인될 때까지 투자를 보류하는 경향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6일 펴낸 '최근 설비투자 동향과 시사점'보고서에 따르면 1990~97년 설비투자 동향은 경기국면 대비 3분기를 앞서고 2분기를 후행 했으나, 98년 이후에는 선행성ㆍ후행성 모두 1분기로 줄어들었다. 97년 이전에는 불황이 한창(경기 회복 9개월 전)일 때부터 투자를 시작하고 경기가 나빠진 뒤에도 6개월은 설비를 확충했으나, 이제는 경기 회복세가 완연한 시점(3개월 전)에만 투자에 나서고 그마저도 경기가 꺾이는 것과 동시에 접어 버린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설비투자 증가율은 1991~2000년 9.1%에서 지난해 3.7%로 크게 둔화했으며, 제조업 생산능력은 1970년대 15.6%, 1980년대 8.2%에서 2000년대 4.0%로 추락했다. 투자의 성격도 생산설비를 확충하기보다는 기존 설비의 유지ㆍ보수 수준에 머물고, 투자 규모도 내부 보유자금 범위에 맞추려는 경향이 뚜렷하다. 98년에는 투자재원 중 내부자금 비중이 29.9%에 그쳤으나 2010년엔 67.9%로 급증하는 등 재무적 안정성이 중시되는 분위기다.
재정부는 "설비투자 부진은 생산 감소, 소득과 고용 위축으로 이어져 성장 기반을 흔들 수 있다"며 선제적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재정부 경제분석과 한주희 사무관은 "1971년부터 2005년까지 1,175개 미국기업을 대상으로 연구ㆍ개발(R&D) 투자가 시장점유율과 수익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불황 때 이뤄진 선제적 투자는 호황 때 투자보다 시장점유율은 19.8%, 수익률은 25.9% 더 끌어 올린다"고 소개했다.
재정부는 유로존 위기 등 불확실한 대내외 여건 속에서 경제활력을 유지하려면 기업가 정신의 회복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관련 대책을 준비 중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취약한 중소ㆍ중견기업에 정책ㆍ투자정보 제공을 늘리는 한편, 녹색산업과 부품ㆍ소재산업 등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는 신규 투자처 발굴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외국에 진출했다가 돌아오는 'U턴 기업'에 세제지원을 늘리는 방안도 추진한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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