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으로 쓰는 집에 이르니 신사를 모시고 다니는 측근 도인 세 사람과 집 주인이 나왔고 먼저 방으로 안내되어 서로 인사를 주고 받았지요. 단양에서 우리를 데려간 여 도인이 일행을 한 사람씩 소개하고 어느 고장의 누구이며 지역의 행수 또는 대두임을 알려 주었습니다. 측근 도인 한 사람이 나가서 신사를 모시고 오는데 반백의 머리와 수염에 중키의 마른 몸매였고 눈빛이 형형하여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것 같았지요. 당시에 신사의 연세는 쉰 일곱이셨습니다. 그이는 길에서 만나면 그냥 약초꾼이나 마을 농투성이로 보일 정도로 너무 평범해 보였습니다. 거의 삼십대부터 평생을 관군에 ?기며 한 고장이나 마을에 한 달 이상을 머무르지 못하고 숨어 다니며 전도를 다녔다지요. 나중에 서일수 대행수가 스승을 일컬어 '최 보따리'라 별명을 지은 것은 저러한 연유였습니다. 신사께서 좌정하자 우리 일행은 일시에 일어나 큰절을 올렸고 그이는 앉은 자리에서 두 팔을 양쪽으로 짚고 맞절로 받았지요. 측근의 손천문이란 도인이 우리들의 출신지와 이름과 직임을 적어 올리니 신사께서 보시고는 말했지요.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소. 어느 분이 경전을 찍어 왔다더니……
그이가 둘러보자 손 도인이 대답합디다.
예. 충청도 내포 지역에서 박 초시 형제가 수고를 하셨습니다.
시절이 어려운 때에 팔도 각처에 도인들이 늘어나고 있으나, 다만 안타까운 것은 교리의 전파가 미흡하더니 참으로 귀한 일을 해주셨소. 이는 돌아가신 대신사는 물론이요 내가 일일이 접하지 못한 교도들에게 기쁜 소식이 될 거요. 그게 언제였던가?
다시 물으니 손 도인이 곁에서 말했지요.
삼 년 전입니다. 백여 부를 찍었구요 다시 이듬해에 단양에서 천지도가를 찍었습니다.
그랬군요. 저는 글은 한 자도 모르는 무식자이지만 어려서부터 종이 만드는 일로 밥 먹고 살아왔고 그 때에 어깨너머로 방각술과 목각조판도 좀 배워서 책 만드는 일을 좀 압니다.
저녁상이 들어와 우리는 다 함께 둘러앉아 먹게 되었지요. 산골의 식사라야 서속에 감자를 썰어넣은 밥이라 실하지 못하였으나 된장과 각종 산나물 버섯이 있으니 먹을 만했지요. 스승님 이하 모두들 머리 숙여 기도를 올려 하늘에 고하고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따라온 서 지사는 어리둥절하여 주위를 두리번거릴 뿐이었습니다. 신사께서는 일찍이 사람이 하늘이라는 대신사의 말씀을 전하기도 했지만 스스로 밥이 하늘이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이천식천(以天食天)이 그 말씀이지요. 물건마다 하늘이요 일마다 하늘이니 만약 이런 이치를 옳다고 한다면 모든 물건이 다 하늘로서 하늘을 먹는 것 아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로서 하늘을 먹는 것은 곧 하늘의 기화를 통하게 하는 것이니, 대신사께서 모실 시(侍)자의 뜻을 풀어 밝히실 때에 안에 신령이 있다함은 하늘을 일컬음이요 밖에 기화가 있다함은 하늘로서 하늘을 먹는 것을 말씀한 것이니 지극한 천지의 묘법이 도무지 기운이 화하는 데 있느니라 하셨지요. 서 지사는 원래가 불승이었던 사람이어서 이심전심으로 깨달았던 것입니다. 저녁을 마치고 나서 신사께서는 서 지사를 데리고 나가 주위를 거닐었습니다. 신사께서도 자신과 가족이 풍비박산했듯이 서 지사가 임효의 거사에 휘말려 쫓기고 떠돌게 된 연유를 아시고 그가 입도의 뜻을 품고 찾아온 것도 알고 있었던 듯합니다. 나중에 서 지사가 우리들에게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나 대강 어떤 말씀이 오갔는지는 내용만 전달해주었을 뿐입니다. 서지사가 먼저 질문을 했겠지요.
천지란 무엇입니까?
천지는 한 기운 덩어리입니다.
사람이 하늘이란 무슨 뜻입니까?
하늘 땅 사람은 도무지 한 이치 기운뿐이지요. 사람은 바로 하늘 덩어리요, 하늘은 바로 만물의 정기입니다. 푸르고 푸르게 위에 있어 해와 달이 걸려 있는 곳을 사람이 다 하늘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 홀로 한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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