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방치된 아동을 보고도 신고를 하거나 부모를 처벌하는 경우가 드문 이유는 그만큼 개념 정립과 지원의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과 달리 국내는 관련 규정이 전무한 상태다. 맞벌이 가정이나 취약계층을 위한 아동 보호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부모가 아동을 방임해도 책임을 묻기 힘들다. 전문가들은 "방임에 대해 명확히 규정하고 지원도 제대로 해서 아동을 방치하는 부모에게 책임을 엄격히 물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아동복지법은 '아동 방임은 학대'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아동의 연령이나 방치 시간 등 기준은 없다. 아동복지법 17조에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양육·치료 및 교육을 소홀히 하는 행위'라고 명시돼 있을 뿐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방임 개념이 모호해서 학교에 안 오고 주변을 배회한다거나 겨울인데 가을 옷을 입고 다니는 아이가 있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그때 그때 방임사례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은 '13세 미만의 아동이 보호자 없이 1시간 이상 혼자 있는 상태'를 방임 행위로 간주한다. 아동이 혼자 하교하거나 길거리를 다니는 것도 금지돼 있다. 이양희 성균관대 아동청소년학과 교수는 "미국에선 아이가 혼자 도서관에 오면 사서가 '아이가 혼자 도서관에 왔다'고 보호기관에 신고하고 관계자가 부모를 조사, 권고 조치할 정도로 철저히 운영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이웃은 신고의무자가 아니지만 서양에서는 이웃도 방임 상황을 목격하면 반드시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부모에게 엄격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건 그만큼 지원도 잘 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각 지역의 아동센터가 아동이 방치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연계하거나 지원하는 지역 거점센터의 역할을 한다. 알코올 중독 등 심신미약으로 제대로 아이를 돌볼 수 없는 부모들을 위한 치료, 상담은 물론 부모역할 교육, 취업지원까지 이뤄지고 맞벌이 등으로 퇴근이 늦는 부모를 위해 시설이나 가정에 직접 파견돼 아이를 돌보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김승권 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방임을 이유로 부모를 처벌하려면 늦은 시간까지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아동센터나 저렴한 비용으로 베이베시터를 둘 수 있는 국가적 인프라가 마련돼야 한다"며 "지역아동센터가 있긴 하지만 직접 찾아오는 사람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운영시간도 길지 않는 등 시행되고 있는 정책은 극히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정승임기자 chon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