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사는 A(10)군에게 엄마는 늘 부재의 존재였다. A군은 부모가 이혼한 후 엄마를 따라왔다. 엄마는 가전제품 공장에서 부품을 조립했다. 야근 근무가 잦았고 집에 와도 A군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엄마와 단둘이 살면서부터 A군은 내내 혼자 지냈다.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두살 터울의 형과는 가끔 전화 통화만 할 뿐이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또래친구들을 사귈 수 있을까 했지만 소극적인 성격이었던 A군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친구가 없어 고민하던 A군에게 형은 PC방에 가서 친구를 만들어보지 않겠냐고 조언했다. 외로움을 잊으러 찾아간 PC방에서 A군은 중학교에 다니는 동네 형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그 일이 일어난 지 몇 달이 지났지만 A군은 여전히 사람을 피하고 의욕이 없다. 학교를 쉬고 있는 A군은 하루 종일 누워서 잠만 잔다. 여전히 엄마는 버는 돈보다 더 많이 나가는 월세를 감당하느라 A군을 돌볼 여유가 없는 상태다.
A군의 경우처럼 부모가 없거나 부모가 있어도 먹고 살기 바빠 제대로 돌보기 못하는 방임 아동은 쉽게 범죄의 표적이 된다. 가난한 가정일수록 위험이 크고, 범죄 피해를 입은 뒤에도 또 다시 방임되는 일이 반복된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B(12)양의 경우도 한 부모 가정에서 돌보는 이가 없는 사이에 성범죄에 노출됐다. 이혼한 엄마,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B양은 엄마가 일을 나갔을 때 수시로 찾아온 엄마의 남자친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9개월간 수십 회에 걸쳐 추행을 당한 B양은 현재 정신적인 충격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상태다. 하지만 B양의 엄마는 생계 때문에 장사를 그만둘 수 없다. 사건이 있고 나서 남자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지만 B양은 다시 어린 동생과 함께 빈 집에 남겨졌다.
방임은 부모에 의한 다른 학대와 달리 먹고 살기 어려운 처지 때문에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 더욱 사회의 관심을 필요로 한다. 한국피해자지원협회 관계자는 "이혼과 재혼 등으로 한 부모 가족이 증가하고 빈곤층이 늘어나면서 부모가 아이를 양육할 의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방치하는 생계형 방임이 늘고 있는 추세"라며 "이런생계형 방임의 경우 범죄 피해를 당한 후에도 속수 무책으로 남겨지는 '돌봄 공백'이 생겨 이차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부모가 아이를 방치해도 친권을 제한한다거나 이웃이 신고를 하는 등 개입하는 경우가 드물다. 법 규정도 사회적 인식도 자녀 양육은 부모의 몫이라는 고정관념이 강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방임 아동을 각종 범죄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는 지역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승원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아동보호전문기관 팀장은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아동 보호 네트워크를 갖추고 부모와 지역 사회가 함께 돌보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자녀 양육에 대한 모든 책임이 부모에게 있다는 인식이 강해 방임 아동 보호에 한계가 있다"며 "저소득 취약계층의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안전망을 마련하는 한편 아동보호기관이 방임 부모에 대해 친권 상실, 친권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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