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임 논란? 수치로 평가 말고 그림 전체로 봐야…한국관광에 4대강사업 필요… 인간·자연 대화공간"
1986년 대한민국은 대학생들을 상대로 경찰이 다단두 연발 총류탄 발사기로 최루가스를 쏴대는 군사독재 국가였고, 중동으로 건설노동자를 송출하고 2류 전자제품을 만들어 팔아 간신히 1인당 연 2,600달러의 소득을 올리는 개발도상 국가였고, 서양인들에겐 가보고 싶긴커녕 어디에 붙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관심 밖의 국가였다. 그해 독일 출신 32세 청년 베른하르트 크반트(Bernhard Quandt)는 스스로의 의지로 한국인이 됐다. 독일인 남자로는 첫 번째, 유럽인 통틀어 스물다섯 번째였다. 청년은 이름을 이한우(李韓佑ㆍ한국을 돕는다는 뜻)로, 뒤엔 다시 이참(李參ㆍ한국에 참여한다는 뜻)으로 바꿨다.
TV 드라마에 단골 조역으로 출연해 온 이 남자의 별스러운 한국 사랑에 한국인들은 괜스레 고마움을 느꼈던 것 같다. 그의 존재가 서양에 대한 한국인의 은근한 열등 심리에 대리보상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그가 이런저런 자리를 거쳐 2009년 차관급인 한국관광공사 사장으로 임명됐을 때, 인사의 부적절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묻혔고 '귀화 외국인 공기업 사장 1호'에 대한 기대가 유달리 컸다. 3년이 흘렀다. 7월 말, 정부는 만료된 그의 임기를 1년 연장키로 결정했다. 지난해 공기업 경영 평가에서 거의 꼴찌의 성적을 받은 터라 안팎에서 비판이 일었다. 관광공사 1층 로비에는 경영진을 성토하는 노동조합의 대자보가 몇 달째 붙어 있다.
이 인터뷰는 그런 연유로 관광공사 주변이 벅적하던 7월 말 요청한 것이다. 올해 사상 최초로 1,000만명을 넘어설 것이 확실해 보이는 외국인 관광객 증가, 창립 50주년을 맞는 관광공사의 앞날에 대해서도 물을 것이 있었다. 이참(58) 사장의 일정이 무척 촘촘해 인터뷰는 지난달 27일에야 성사됐다. 이 사장은 "조만간 연간 관광객 1,100만시대를 넘어 한국인수만큼의 관광객이 올 것"이라며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여름휴가는 다녀오셨나요.
"못 갔습니다. 5월에 일찌감치 휴가원을 제출했는데 연기됐습니다. 공기업엔 '천재지변'이 많거든요. 갑자기 국회에서 부르고 청와대에 들어갈 일이 생기고… 5월엔 외국에서 중요한 손님이 오기도 했어요. 대형 인센티브 관광을 유치하기 위해서 내가 직접 세일스를 하잖아죠. 오면 직접 가이드를 할 때도 있고."
-취임 초부터 길게 휴가를 떠나는 문화를 부쩍 강조했는데.
"통계를 내보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루 이상 숙박하며 여행하는 기간이 평균 2.2일로 나왔습니다. 이래선 관광산업이 발전할 수 없어요. 여행을 해야 인프라가 생깁니다. 휴가를 많이 가는 나라일수록 노동생산성이 높다는 것 또한 다들 알면서 실천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요. 그래서 관광공사가 여행 프로그램을 짜서 기업에 제안하는 등 조금씩 문화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삼성생명은 올해 직원 7,000명에게 주중에 1박2일 여행을 즐길 기회를 줍니다. 내년엔 4만 명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내가 삼성 경영진에게 특강하면서 '세뇌'한 결과입니다."
관광산업에 대한 이참 사장의 지론은 스토리텔링 강화, 그리고 고급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한국은 1,000년 이상 철학자가 집권층이었던 철학의 나라"라는 그는 외형적 랜드마크 대신 오랜 전통문화부터 김치쌈, 홍대 앞 클럽까지 스토리를 입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의 자연이 지닌 풍수적 에너지인 기(氣), 2002년 월드컵 때처럼 흥겨운 에너지인 흥(興), 한국인의 따뜻하고 감성적인 에너지인 정(情)이 그가 말하는 한국적 스토리텔링의 요체다. 더불어 그는 "한국은 비싼 나라라는 이미지를 심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광객들에게 고급스럽고 패셔너블한 나라로 인식될 때, 국가의 이미지나 경쟁력도 올라간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또 성과를 보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덕담은 거기까지 들었다. 묻고 싶은 질문을 꺼냈다.
-유럽 출신답게 권위적인 공기업 문화에 합리주의 바람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는데, 되레 더 독단적이고 소통이 안 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림을 전체적으로 안 봐서 그런 嫄綬?하는 거죠. 나는 창의, 공정, 소통의 문화를 내내 강조하고 실천해왔습니다. 세계적으로 공조직의 기본 철학은 다 통제입니다. 그런데 나는 반대잖아요. 관광 분야는 리스크를 감수하고라도 자율성을 보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창의력이 나오지요. 예전엔 사장이 엘리베이터 타려고 하면 엘리베이터가 올스톱 됐는데, 지금은 내가 다른 직원들에게 '몇 층으로 모실까'하고 버튼을 눌러줘요."
-경영평가에서 노사관리 부분 'D'(부적격 등급) 받았던데.
"정부에서 성과 연봉제를 도입하라고 했는데 그게 관광공사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어요.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따르지 않았더니 D를 주더군요. 지금 노조가 시끌시끌한 것도 나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노정문제의 차원으로 봐야 합니다. 인천공항에 있는 관광공사 면세점의 민영화가 추진되고 있는데 나더러 그걸 확실히 막아달라는 거죠. 직원 55명의 일자리가 달린 문제니까."
-인천의 면세점은 이대로 민영화 되나요.
"내가 결정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정부 정책을 바꾸기도 쉽지 않고. 나는 유지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민간 운영 공항 면세점이) 죄다 외제 명품만 파는데 우리 기업, 특히 중소기업의 제품을 파는 공간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관광공사 면세점은 공기업이라는 명분으로 임대료도 싸게 내고 있으니까 이런 업체들의 제품을 전시, 판매할 수 있다'는 논리로 설득해 보려 합니다. 우리 제품이 버버리, 루이뷔통 사이에 있는 것만으로도 국산품의 명품화에 도움이 됩니다."
(인터뷰 후인 9월 3일 인천공항공사는 관광공사에 공항 면세점의 입찰을 실시하겠다는 공문을 보냈다.)
-27개 공기업 경영실적 평가와 16개 공기업 기관장 평가에서 모두 'C' 등급을 받았습니다. 사실상 최하위입니다. 관광공사 내부 감사의 지적 건수도 예전에 비해 부쩍 늘어났습니다. 그런데도 연임에 성공한 것을 놓고 뒷말이 많던데요.
"그래서 그림을 전체적으로 봐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여기 들어오고 나서 정부에서 내려온 지침이 '이제 수익사업에선 손 떼고 관광 마케팅에만 집중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관광객은 폭발적으로 늘어났죠, 파이낸싱 방법은 없죠…. 수익성이 제로로 나오니까 좋은 점수 받을 리가 없잖아요. 공기업 평가라는 게 계량지표를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전엔 다른 것 없이 그냥 자산을 매각해 등급이 A+로 올랐던 적도 있고. 섭섭하지만 어쩔 수 없죠. 보너스도 몇천만원 날아갔습니다. C 받고 관둘까 생각도 했는데 내가 추진해온 일을 생각해 그럴 수 없었습니다."
이참 사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소망교회를 다닌다. 2007년 대통령 선거 때는 한나라당 한반도대운하 홍보대사 및 대통령후보 특별보좌역을 맡았다. 그는 관광공사 사장에 임명된 후에도 4대강 사업을 관광산업과 연계하는 데 힘썼다. 지난해 가을엔 관광공사가 유명 소설가들에게 4대강과 관련한 에세이 집필을 의뢰하며 거액을 지원키로 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2011년 11월 18일자 한국일보 보도). 4대강에 대한 그의 입장은 여전히 확고했다.
-관광산업에 4대강 공사가 필요한가요.
"반드시 필요하죠. 한국은 수변관광, 수상관광 인프라가 너무 부족합니다. 런던 템스강은 조그만 강이지만 수상 레저는 한강보다 훨씬 활발합니다. 부가가치도 어마어마하고. 많은 사람들이 강을 이용할 때 '내 강이다'하는 주인의식이 생겨 오염도 줄어듭니다."
-4대강은 자연 친수 공간이고 본래 모습 그대로 훌륭한 관광 자원이 아닌가요.
"돌아다니면서 봤는데 대부분 농경지 구간이거나 산업 배후지로 방치돼 있었어요. 사람이 다가갈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잖아요. 문화, 관광자원으로 다시 만들어야 해요. 문명시대에 들어온 만큼 원시림 같은 자연은 없습니다. 어느 나라에도 없어요. 시베리아 어딘가 사람이 안 사는 데면 모르지만. 인간과 자연이 대화를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고, 우리에겐 4대강이 바로 그곳입니다."
-강에다가 꼭 시멘트를 발라야 자연과의 대화가 가능한가요.
"사람이 문명을 이루어 사는 한 자연을 계속 건드릴 수밖에 없어요. 자연과 사람이 같이 있는 공간은 시멘트를 바를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시멘트 옆에다 꽃을 심으니 자연친화적이잖아요. 강이 마음껏 흐르고 범람하고 방향을 바꾸고 그랬던 건 문명시대 이전의 이야기죠. 유럽에서는 이미 수백년 전부터 (4대강 같은 사업을) 해왔어요. 한국은 최근에 시작한 것뿐이고요."
(이참 사장의 주장과 달리 그의 모국인 독일 등에서는 쌓았던 댐과 제방을 허물고 자연 하천으로 되돌리는 복원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홍수 예방과 운하 건설을 목적으로 19세기에 정비 사업을 한 라인강이 대표적인 예다.)
"한국에서는…" 하고 질문해도 이참 사장은 꼭 "우리나라에선…"하고 대답했다. 한국말도 독일어 이상으로 유창했다. 그는 철저한 한국인, 아니 '우리나라 사람'이다. 주머니에 고춧가루통을 늘 지니고 다니는 것은 유명한 얘기. 술자리를 함께 할 기회가 있다면 그가 제조하는 '삼관주(맥주, 막걸리, 소주를 각 6대 3대 1 비율로 섞은 폭탄주)'를 마시게 된다. 그는 귀화한 외국인 출신으로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고, 어쩌면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지도 모른다.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인생에 대해, 그리고 1년 연장된 임기 이후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역사적인 사명감이 있다. 외국인 출신으로 '1호' 역할을 많이 했잖아요. 여러 분야에서 개척해야 할 역할, 사명이 있다고 생각해요. 주어지는 대로 역할을 할 겁니다. 정치? 구체적인 계획은 없습니다. 지금은."
-30년 넘게 한국에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글쎄, 만난 사람이 너무 많아서… 김수환 추기경이 인상적이었어요. 소위 '이순신 정신'이 있는 분이라고 느꼈습니다. 나라로부터 무엇을 받고 이런 것 떠나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까, 그런 희생정신이 대단한 분이셨어요. 그러면서도 카리스마 있고. 독일어도 잘 했어요."
-다른 귀화 외국인이 공직을 맡게 된다면 해주고 싶은 조언은.
"인위적으로 귀화인 2호, 3호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국제적 인물을 많이 고용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한국어는 제대로 해야 합니다. 내가 이 일을 맡게 된 건 대통령의 권유도 있었지만, 국민들이 '그 사람은 우리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었기에 가능했지 않겠어요?"
이 사장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국가 경제규모나 잠재력에 비해 관광산업의 위상이 취약하고,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 간의 불균형 성장 등이 극복해야 할 현안이라고 지적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관광인프라과 관광수용태세의 획기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설 즈음 그는 한마디만 더 하겠다고 붙잡았다.
"앞으로 관광의 시대가 온다고 확신합니다. 방한 관광객 1,000만, 2,000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제주도 인구가 55만인데, 올해 관광객이 150만이 갈 겁니다. 제주도는 하는 걸 대한민국은 왜 못하는가. 경제가 흔들리지 않으려면 인구가 1억은 돼야 한다는데, 그게 꼭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지 않아요. 유럽처럼 동시 체류 인구 개념을 가져야 합니다. 관광객이 계속 늘면 1억 인구는 몇 년 안에 가능합니다. 아시아의 스위스가 될 수 있는 것이죠. 그러자면 인프라가 부족해요. 그러니까 휴가들 좀 열심히 가세요."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유상호기자 shy@hk.co.kr
전혼잎 인턴기자 (한양대 국어국문 4)
● 이참은
1954년 독일 라인란트-팔츠주에 있는 오래된 도시 바트크로이츠나흐에서 태어났다. 77년 독일 구텐베르크대를 졸업했다. 78년 통일교 행사로 한국을 찾았다가 체류를 결심하고 주한 독일문화원 강사부터 드라마 단역 배우까지 여러 직업을 섭렵했다. 86년 귀화해 이름을 이한우로 바꿨다. 2001년 이참으로 개명했다. 그 즈음 개신교로 개종했다. 한국상공회의소 이사, KTF 사외이사, 기아자동차 고문, 예일회계법인 고문 등 여러 직함을 가졌었는데 그의 표현에 따르면 "늘 2인자만 했다". 1인자 자리는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처음. 그림 그리기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가족은 부인 이미주(55)씨와 아들 재이수(27), 딸 미가(22)씨 등 모두 네 식구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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