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론 발명자인 윌리스 캐러더스는 1938년 상용화 발표에서 "공기와 물과 석탄에서 만들고, 강철보다 강하다"고 내세웠다. 인류에 엄청난 편익을 준 합성섬유의 개발을 알린 상징적 선전이었다. 뛰어난 강도와 탄력을 자랑한 '인조 비단' 나일론은 한동안 진짜 비단을 웃도는 인기를 누렸다. 열에 약하다는 치명적 약점은 치유되지 못했다. 그 약점을 메우거나 강점을 키운 것이 나일론 이후 고분자계 최고 발명품으로 꼽힌 아라미드(Aramid)다.
■ 아라미드는 '방향족 폴리아마이드(Aromatic Polyamide)'의 합성어다. 고리 모양으로 결합된 유기화합물이 지방족과 방향족으로 나뉘고 폴리아마이드의 지방족이 바로 나일론이니, 화학적으로 아라미드는 그 사촌 뻘이다. 아마이드기(-CONH-)가 양쪽으로 방향족 고리와 결합한 구조를 띤다. 이 아마이드 결합이 85% 이상이어야 한다는 미 통상위원회(FTC)의 규정이 아라미드 섬유의 국제적 규격으로 통용된다.
■ 아라미드는 아마이드기와 결합한 방향족 고리의 꼭지점 위치에 따라 메타계, 파라계 등 여러 종류로 나뉜다. 67년 듀폰이 출시한 첫 아라미드 섬유 '노멕스(NOMEX)'는 메타계였다. 열과 화학약품, 방사선에 강해 각광을 받았으나 '꿈의 섬유'란 찬사는 73년 역시 듀폰이 출시한 파라계 '케블라(Kevlar)'에 이르러서였다. 고강도와 고탄성, 내화성을 고루 갖춘 파라계 아라미드는 방탄복과 타이어, 밧줄, 스포츠장비 등에 폭넓게 활용됐다.
■ 그러나 '꿈의 섬유'는 후발주자에겐 악몽 같았다. 개발단계에서 듀폰과 선두를 다투다가 자금사정으로 5년 늦게 '트와론(Twaron)'을 출시한 네덜란드 악소(AKZO)는 듀폰과의 특허전쟁으로 80년대를 보내야 했다. 트와론을 넘겨받은 일본의 데이진(帝人)과 듀폰의 시장 지배를 코오롱의 '헤라크론(Heracron)'이 깨나 싶더니, 터무니없는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 가로막혔다. 기업의 국적이 아니라 더 많은 인류가 아라미드의 혜택을 누릴지 여부를 잣대로 항소심을 지켜볼 생각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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