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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5. 하늘과 땅과 사람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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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5. 하늘과 땅과 사람 <114>

입력
2012.09.05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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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희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더니 드디어 돌아앉아 소매로 눈을 씻고는 말을 꺼냈다.

서 지사와 이 서방을 저도 잘 알지만 내 아우에게는 더욱 형제 같은 사람들이라오. 아마 만나면 반가워 할 텐데……

그러면 아우님께서 덕산에 사시나요?

나도 반가워서 이곳에서 지척이나 다름없는 덕산에 그가 살고 있기를 바라고 물었지만 그는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갑오년 이후로 내 아우는 세상에 얼굴을 드러내고 살 수 없는 형편이 되어버렸지요. 내가 이나마 집안 제사라도 받들고 살아가는 것도 천만다행 조상님 은덕입니다. 아우는 지금 이 고장에 있지 못하고 강원도 깊은 산골에 솔가하여 살고 있습니다. 그는 분명히 지금도 서 지사나 이 서방과 연이 닿을 것입니다. 갑오년 난리 이후에 삼남은 물론이오 위로 경기도와 황해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도인들이 죽고 가산이 적몰했으며 봉기를 했던 남도의 대행수들은 김봉집 대장 이하 모두 서울로 압송되어 일본인의 문초와 재판을 받고 처형되었습니다. 한때에는 내포 지방 백성의 거의 절반이 도인들이었다지만 지금은 내색을 못하고 겨우 목숨만 붙어 살아남은 처지입니다. 저도 거사할 때에 직접 싸움에 나가지 않은 탓으로 나중에 체포되었으나 아우의 행적만 문초당하고는 형장을 받고 겨우 살아났지요. 살아난 일반 도인들은 모두가 다시는 천지도를 믿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풀려났으니 이제 평생 부끄러움에 시달리며 마음을 감추고 살아갈 밖에요.

주인이 계속하여 낙담과 슬픔의 빛을 보이는데 나는 말머리를 돌려 서 지사에 대하여 먼저 묻고 싶었다.

군란이 있던 해에 아우님께서 먼저 옥에서 풀려나 고향에 돌아오셨고, 그 뒤를 따라서 몇 달 뒤에 서 지사가 찾아 오셨을 겝니다. 제 남편은 이듬해 연희패에 들어 이 지방을 돌아다니다 들르셨을 테구요. 그때에 기억나는 일을 좀 듣고 싶어요.

아우가 뱃길로 예산에 돌아온 것이 군란 나던 해 늦여름이었지요. 그는 당진포에서 세마에 책짐을 싣고 돌아왔는데 나는 경을 치게 된 아우가 무사하게 풀려난 이야기와 서 지사의 소식을 듣고 더욱 기뻤습니다. 저와 아우는 이미 오래전에 천지도에 입도하였고 이는 아우를 첫번째 곤경에 빠트린 임효 때문이었습니다. 임 서방은 저희뿐 아니라 신사님을 비롯한 천지도 전체를 위험하게 했고 관군의 추적을 받게 만들었지요. 서 지사는 진천의 산사에 스님으로 머물 적부터 아우와 친분이 있었습니다. 그이가 두 번이나 아우를 구명해준 셈이올시다. 아마 약조가 미리 있었던지 한 달쯤 지나서 서 지사가 저희 집에 찾아왔습니다.

이듬해 봄에 우리는 책의 일부를 내포 지역과 전라도를 위하여 남겨두고 단양의 아무개 대두에게 서울에서의 방각 형편도 알리고 책과 자금의 결산도 알릴 겸 길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저희 계에서는 우리 형제와 서 지사와 대두 두엇이 동행하였지요. 서 지사가 따라나섰던 것은 만약 이번 길에 신사를 만날 수 있다면 자기도 입도하겠다고 하여 아우가 적극 끌어들였기 때문이었지요. 당시는 군란이 휩쓸고 간 뒤에 한양에 청군과 일군이 진을 쳤고 나라는 그야말로 풍전등화와 같다는 소문이 전국에 돌아서 말깨나 하고 글깨나 읽었다는 지방 서생들 사이에는 뭔가 세상이 바꾸지 않고는 안 되겠다는 결기가 번져가고 있던 때였소. 우리가 단양의 여 아무개를 찾아가니 세 해 전에 경전을 백 부 찍어서 각 지역 행수에게 돌리고 이를 다시 현지에서는 필사하여 대두들에게 나누어주어 도인들이 기도를 할 때에 읽도록 했다지요. 그렇지 않아도 바야흐로 교세가 늘어나는 때이라 경전은 매우 필요할 때였습니다. 단양 행수는 우리를 인솔하여 강원도 인제 원막골의 깊은 산중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는 탑거리에 우리를 남겨두고 산으로 올랐다가 다시 나타나서 우리를 산등성이 넘어 뒤편 골짜기로 안내했습니다. 원막골은 오래전부터 화전민이나 약초꾼들이 살던 너와집이 대여섯 채 있는 궁벽한 곳이었습니다. 아마도 관에서 탐지했다 할지라도 기찰할 수 없을 정도로 숲과 계곡이 깊은 곳이었지요. 집들도 숲 속에 멀찍하게 떨어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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